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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안타깝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낸 가슴 아픈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소중하고 존경하는 선배님, 사랑하는 동료를 떠나보냈습니다. 아직도 그 미소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미처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날벼락 같은 이별에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배우 차태현
지난 2월, 우리들의 어머니 故 김지영이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그리고 4월 9일에는 故 김영애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 연예계가 또다시 슬픔에 잠겼으며, 연극계 대모인 故 윤소정은 6월 16일 세상과 이별했다. 탤런트 이미지는 58세의 젊은 나이에 ’고독사’로 사망 비보를 알려 충격을 안겼고, 아역스타 출신 황치훈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흥보가 기가 막혀’로 큰 인기를 얻은 듀오 육각수 멤버 도민호와 1980년대 김한국 이봉원 임미숙 등과 함께 큰 인기를 얻었던 개그맨 조금산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의 구탱이형 故 김주혁과 한류그룹 샤이니의 보컬 故 종현이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많은 별들이 우리의 곁을 떠나 허망하게 지고 말았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며 급작스럽게 추워진 10월의 마지막 날, 배우 김주혁이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우리의 곁을 떠났다. 향년 45세. 예상치 못한, 충격적이고도 믿을 수 없는, 너무나 이른 이별이다.
고인은 강남의 한 아파트 정문 부근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 발견 당시 의식이 없던 상태였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졌다.
1998년 SBS 8기 공채 탤런트로 발탁된 그는 대배우로 이름을 남긴 고(姑) 김무생의 아들로서 일찌감치 유명세를 탔다. 지난 20년간 드라마 ‘카이스트’ ‘사랑은 아무나 하나’ ‘프라하의 연인’ ‘무신’ ‘구암 서준’ 영화 ‘청연’ ‘광식이 동생 광태’ ‘아내가 결혼했다’ ‘공조’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올해 초 개봉한 영화 ‘공조’에서 악역을 소화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난 9월 종영한 tvN 드라마 ‘아르곤’에서는 정의감 넘치는 기자 김백진을 연기해 또 한 번 호평 받았다. 국민 예능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의 맏형으로 ‘구탱이형’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그였기에 대중은 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최근까지도 고인은 영화 ‘독전’에서 하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으며 영화 ‘흥부’의 개봉도 앞두고 있었으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20년에 걸친 연기 열정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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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김종현)은 짧은 생을 뒤로 하고 팬들 곁을 떠났다. 향년 27세. 그룹 샤이니와 솔로 활동으로 한국은 물론 전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이었다.
종현은 서울 청담동 한 오피스텔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고, 심정지 상태로 건대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경찰은 종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에는 지난 9년의 시간을 함께한 태민 온유 키 민호가 상주로서 종현의 마지막을 지켰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를 비롯해 소녀시대 엑소 슈퍼주니어 레드벨벳 보아 김민종 크리스탈 엠버 등 소속사 식구들이 함께했다. 지인과 동료 연예인들 외에도 일반 조문객들을 위한 분향소가 따로 설치돼 수많은 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지난 2008년 5월 그룹 샤이니로 데뷔한 종현은 팀 활동을 통해 ’누난 너무 예뻐’ ’루시퍼’ ’셜록’ ’드림걸’ 등의 히트곡을 냈다. 자작곡 등으로 자신의 솔로 앨범을 내거나 다른 가수들의 곡을 작업해 싱어송라이터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종현이 올해 4월 발표한 두 번째 미니앨범 ’이야기’의 타이틀곡 ’론리’(Lonely)는 음원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팬들의 추모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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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으로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연기 혼을 불태웠던 배우 김영애도 끝내 세상과 작별했다. 향년 66세.
고인은 암이 췌장에서 시작해 간과 림프 등으로 전이되며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불굴의 의지로 연기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2012년 MBC‘해를 품은 달’ 촬영 도중 황달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을 선고받았지만 주변에 이 사실을 숨긴 채 드라마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병원을 왕래하며 연기를 이어갔다. 이후에도 수술과 치료를 병행하면서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동했다. 드라마 ’내 사랑 나비부인’ ’메디컬 탑팀’ ’미녀의 탄생’ ’킬미 힐미’ ’마녀 보검’ ’닥터스’와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변호인’ ’우리는 형제입니다’ ’현기증’ ’카트’ ’허삼관’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인천상륙작전’이 그가 투병 중 출연한 작품이다.
그리고 지난해 8월부터는 KBS2 주말극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주인공 가족의 엄마 최곡지 역을 맡아 매 주말 시청자를 만났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된 고인은 결국 병원에 입원했고 50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불굴의 정신력을 발휘한 뒤 이후 요양 끝에 결국 사망했다.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SBS연기대상 최우수 연기상,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 대종상 여우조연상,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코리아드라마어워즈 공로상 등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배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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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의 별’ 고(故) 윤소정 역시 생전 소중했던 사람들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고인은 감기가 악화돼 폐렴 증세로 입원치료를 받아오던 중 갑작스럽게 패혈증이 발병해 세상을 떠났다. SBS 사전제작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에 출연하는 등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해오던 그녀이기에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후배들을 물론 대중도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엄수됐는데, 당시 많은 연극인들은 눈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특히 고인의 절친한 동료인 손숙은 “친구를 보내며. 떠나는 순간까지 멋있게 너답게 윤소정답구나. 시크하게 센치하게 당당하게 가는구나. 무대에서는 섹시하고 빛나는 배우, 오 선생과 아이들에겐 좋은 아내, 동료들에겐 든든한 동지였고, 후배들에겐 뜻깊은 선배였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1961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윤소정은 1962년 TBS 1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해 무대와 브라운관을 오가며 활약을 펼쳤다. 1966년 극단 ’자유극장’이 창단되던 해에 김혜자, 선우용녀, 故김무생, 최불암, 박정자 등과 함께 창단 멤버로 연극계에 입문, 극단의 창단 공연인 ’따라지의 향연’에 출연했다.
1975년 ’태’ 공연 이후 잠시 연극 무대에 오르지 않았던 윤소정은 김도훈 연출이 1979년 창단한 극단 ’뿌리’의 창단멤버로 연극 활동을 재개했다.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연기를 펼쳤다. 특히 1997년 출연한 영화 ’올가미’에서는 혹독한 시어머니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유작이 된 사전제작 드라마, SBS 월화극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자혜대비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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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김지영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2년간 폐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고인은 악화된 건강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여자를 울려’, ’판타스틱’ 등에 출연하며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60년 신성일·엄앵란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상속자’로 데뷔한 고인은 꾸준히 영화 및 드라마에 출연, 2005년 KBS2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KBS연기대상 여자조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도가니’에 출연했으며, MBC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tvN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 등에서도 활약했다.
고인은 생전 “크고 작은 역을 떠나 나이를 먹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소중하다. 된장 맛을 내라면 된장 맛을 내고, 고추장 맛을 내라면 고추장 맛을 내면서 남은 세월,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카메라 앞에서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 바 있다.
이 외에도 탤런트 이미지는 ’고독사’라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