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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에 이은 또 한 편의 유관순 이야기가 관객들을 만난다. 아픈 만큼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역사가 다시 스크린에 펼쳐진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탄생한 ‘1919 유관순’이 그 주인공이다.
한줄기 빛도 없을 것 같던 어두운 시절,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수한 생명들이 받쳐졌고 올 해로 대한민국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젊음도 그리고 목숨도 아끼지 않고 조국을 위해 받쳤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유관순 열사의 삶이 다시 한 번 재조명되고 있다.
유관순 열사는 1916년 자신이 다니던 교회 선교사의 추천을 받아 교비 유학생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이화학당에서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오후 3시만 되면 모두 수업을 중단하고 조국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회와 시국토론회 및 외부인사 초청 시국강연회 등을 개최하고 있었는데, 유관순 열사는 이 시기를 시작으로 독립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제가 고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은 분노로 치를 떨었다. 참다 못 한 일본 유학생들은 독립 선언과 동시에 3월 1일, 마침내 서울에서 만세 운동을 시작한다. 만세 운동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총독부는 모든 학교에 강제로 휴교령을 내렸다.
유관순은 고향으로 내려와 자신이 있던 충남 병천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음력 3월 1일, 밤새 태극기를 만들고 만반의 준비를 한 유관순은 날이 밝자 동지들과 함께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고 아우내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사람들이 유관순을 따라 다 같이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주동자로 낙인찍힌 유관순은 체포되어 8호 감방에서 함께 체포된 소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모진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유관순은 그 어떤 고문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꿋꿋이 참아 냈다. 하지만 오직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던 그녀는 결국 19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차디찬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어린 나이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관순의 애국심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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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간절한 기도이자, 소망을 펼쳤던 유관순 열사와 옥고를 치룬 8호감방의 또 다른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는 학생, 기생, 시각장애인, 과부, 만삭의 임산부, 간호사, 백정의 딸 등 유관순 열사 외 숨겨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그려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로부터 공식 후원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더해 전문가들의 사실적이고 생생한 고증과 자문을 통해 영화를 이어가며 지금까지 어떤 작품보다 그 시절 그녀들의 행보를 사실적으로 다룰 것으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0년 전, 대한독립을 위해 세상에
kiki2022@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