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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곤욕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어두운 터널 속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거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지긋지긋한 현실이 싫다며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들. 벌써 나이는 마흔을 넘겼고, 인생의 황금기는 지난 것만 같다. 하지만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로또를 사지 않아도, 당신에게도 인생역전의 기회가 올 수 있다. 하지만 씨를 뿌려 결실을 맺기까진 혹독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송가인, 양준일, 이정은, 김응수, 박나래는 열정과 실력, 인내로 오랜 암흑기를 벗어나 스타덤에 오른 주인공들이다. 데뷔 이후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겐 지금이 바로 뜨거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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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트롯’ 출연 후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가수로 떠오른 송가인. 사진|TV조선 |
송가인(35)은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2019년 가요계가 건진 가장 큰 수확이라면 단언컨대 송가인이다. 그의 인생은 ‘미스트롯’ 출연 전과 후로 나뉜다. 타고난 재능과 실력에도 그는 긴 무명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소속사, 매니저도 없이 화장실서 무대 의상을 갈아입거나 트럭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그냥 팔자려니 생각했다고 한다.
무녀 어머니의 조언으로 ‘미스트롯’에 출연한 그는 그 팔자를 바꿔놓았다. 최종 결선 무대에서 1등을 한 그는 “얼굴도 못 생기고 키도 작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쪽 일을 하면서 자신감이 없었다. 외모가 별로라 ‘넌 남들보다 1000배 잘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갈고닦은 탄탄한 실력과 내공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가수’로 떠올랐다. 실력과 열정을 이길 무기는 없다는 걸 증명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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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 발표곡으로 신드롬의 중심에 서 있는 인생역전의 주인공 양준일. 사진|스타투데이 DB |
1991년 데뷔, 2019년 컴백해 ‘시간여행자’로 불리는 양준일(52)은 대표적인 인생역전의 주인공이다. 그에게 ‘슈가맨’ 소환은 ‘인생 로또’였다. 1991년 데뷔해 ‘리베카’ ‘가나다라마바사’(Pass Word) ‘댄스 위드 미 아가씨’(Dance With Me 아가씨) 등 히트곡을 남겼지만 폭넓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온라인 탑골이 부흥하면서 그는 30년 만에 재평가됐다. 기적같은 신드롬의 중심에 섰고, 강제 소환됐다. 이후 데뷔 28년 만에 첫 팬미팅을 열었고,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광고모델로도 발탁됐다. 지금도 수많은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양준일은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았다. 불운의 가수생활을 접고, 영어강사로 생계를 유지했고, 5년 전 미국으로 도피하다시피 떠났다. 그곳에서 레스토랑 서빙 일을 하면서 한달 한달을 근근이 살았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느라 하루 14시간씩 서빙을 했다”고 말한 그의 개인사는 양준일 신드롬을 더욱 타오르게 했다. 양준일에게 열광하는 것은 추억과 향수에 젖은 중장년층만이 아니다. 2,30대, 10대 팬들까지도 그의 앞서간 감각에 감탄하며 입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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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쉰을 앞두고 영화 ‘기생충’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여배우로 떠오른 이정은. 사진|스타투데이 DB |
쉰을 앞두고 활짝 핀 여배우가 있다. 1991년 연극배우로 데뷔해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친 이정은(50)이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여배우로 떠올랐고, 드라마 ‘동백꽃 다시 필 무렵’으로 대체불가 여배우임을 입증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함안댁, ‘눈이 부시게’의 혜자 엄마를 비롯해, 영화 ‘변호인’, ‘택시운전사’ ‘옥자’ 등 수많은 작품에서 존재감을 보여온 그는 이제 더 이상 신스틸러나 감초 배우가 아니다.
28년간의 긴 무명 시절마저 그에겐 연기 공부의 장이었다. 이정은은 뒤늦게 빛을 본 것을 억울해하지도 탓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배우다. “더 일찍 떴다면 자만했을 것”이라며 “연기는 신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1년 동안 13번 이상 이사를 다닐 정도로 그는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다.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연기를 하기에 행복했다고 한다. “즐거워 연기를 했고 좋아해 되든 안되든 연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그의 소신과 인생철학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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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고 더블로 가” 13년 만에 강제 소환돼 전성기를 맞은 배우 김응수. 사진|스타투데이 DB |
“묻고 더블로 가”.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 대사로 13년이 지난 지금 강제 소환돼 전성기를 맞은 배우 김응수(60). 젊은층 사이에서 다시 회자되며 햄버거, 치킨 등 톱스타들의 전유뮬로 여기지던 굵직한 광고를 꿰찼고 래퍼와 컬래버 음원도 냈다.
데뷔 24년 만에 스타급 전성기를 맞은 김응수에게 이런 영광은 하루 아침에 온 게 아니다.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1981년 연극에 입문해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달랑 30만원의 연봉을 받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연출을 배우러 일본으로 떠났고, 연출부 스태프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영화 ‘깡패수업’(1996)으로 본격 영화판에 뛰어든 그는 조직보스 친일파 등 주로 악역전문 배우로 활동했지만, 신스틸러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단 몇 초의 장면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건너 환갑을 앞둔 나이에 젊은이들의 대세로 떠오른 김응수에겐 지금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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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수 도전 끝에 2019 MBC ‘연예대상’ 최고 영예인 대상을 받은 박나래. 사진|스타투데이 DB |
3수 도전 끝에 2019 MBC ‘연예대상’ 최고 영예인 대상을 받은 박나래(36). 그에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잔혹사가 있었다. “12년 무명을 겪으면서 ‘비호감’이라는 소리도 듣고, 그렇게 하면 방송 못 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게스트로 곳곳에 얼굴을 보인 박나래는 거침없는 입담과 온 몸을 던지는 개그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돌려깎기를 했다. 강남 어딘가에 내 뼈조각이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라거나 “그때 혀 수술도 했어야 한다” “남자는 쉼 없이 만나고 있다. 여의도 환승센터 수준이다”는 솔직한 입담은 시청자들에게 친근함을 줬다.
박나래는 지난 연말 연예대상을 받고 오열에 가까운 눈물을 흘렸으나 수상 소감에서도 웃음을 줬다. “내 키가 148㎝다. 정말 작은데 이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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