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1 총선에서도 그랬듯, 민주통합당은 스스로 찾아온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리는 일이 너무나 잦습니다.
어제 민주통합당 울산지역 경선 현장의 모습입니다.
경선에 나선 네 후보가 앉아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습니다.
바깥에서는 손학규 후보 지지자들의 불공정 경선을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고, 그나마 자리에 참석했던 정세균 후보 쪽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앞서 비문 후보 3인은 오후 2시30분부터 울산의 한 호텔에 모여 선관위 재구성과 모바일 투표 방식 변경을 요구하며 울산 경선 불참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 선관위는 모바일 투표 문제점이 개선될 때까지 개표 결과 발표를 보류해 달라는 비문 후보 3인의 요구를 거부하고, 오후 6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후보 연설도 생략한 채 말입니다.
당 지도부와 선관위는 선관위를 다시 꾸리자는 비문 후보 3인의 요구가 불쾌했던 걸까요?
손학규 후보 쪽 김유정 대변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김유정 / 손학규 캠프 대변인
- "제주 경선에서 투표의 공정성과 표심의 정확한 반영이라는 원칙 훼손이 있었습니다. 문제 제기에도 당 선관위가 묵살했습니다. 시작부터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경선이 됐습니다. 당과 선관위에 문제가 있습니다."
비문 후보 3인이 말하는 모바일 투표의 불공정성이란 뭘까요?
현행 방식은 기호 1번 정세균, 기호 2번 김두관, 기호 3번 손학규, 기호 4번 문재인 후보까지 모두 안내를 들은 뒤 투표를 해야 유효표로 인정됩니다.
기호 4번까지 다 듣지 않고 도중에 투표하면 기권처리됩니다.
다시 말해 정세균, 김두관, 손학규 지지자가 중간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이름만 듣고 중간에 투표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전부 기권처리되니 불공정하다는 겁니다.
비문 후보 3인은 이렇게 기권처리된 표가 상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끝까지 듣고 투표할 수밖에 없으니, 상대적으로 기권표가 적다는 게 비문 후보 3인의 주장입니다.
정세균 후보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정세균 /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
-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경선은 많은 분으로부터 승복을 받을 수 없고, 인정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정한 경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투표 행위는 공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나쁜 의도로 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제주도 경선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후보 이름을 다 듣지 않고 중간에 투표해도 유효 처리하면, 마지막 기호를 받은 후보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권자에게 자기 기호와 이름을 말하지도 못한 채 투표행위가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점이 있다 보니 선관위는 기호가 정해지기 전에 투표 방식을 시연까지 하며 각 후보진영과 합의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 방식은 지난 6월 이해찬 당대표를 뽑을 때도 사용한 방식이라고 합니다.
이해찬 당 대표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해찬 / 민주통합당 대표
- "시행과정에서 일부 후보들이 불공정 룰을 말하는 데 검토한 결과 경선준비단에서 룰을 확정하고 합의된 사항을 했기 때문에 룰에 불공정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러면, 비문 후보 3인은 자신들의 기호가 유리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문제를, 거기다 사전 합의까지 한 방식을 제주에서 참패하자 뒤늦게 딴죽을 걸기 식으로 나오고 있다는 걸까요?
제주 경선 참패의 원인은 자신의 경쟁력 부족이 아니라, 애꿎은 모바일 투표 방식에 돌리려는 꼼수일까요?
문재인 후보 쪽은 당과 선관위 결정이 어떤 식으로 나오든 다 따르겠다면서도 비문 후보 3인의 주장이 억지라고 불쾌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투표 문제점은 각 후보진영이 다 알고 있었고, 심지어 내부적으로 교육까지 시켰다는 겁니다.
문재인 캠프 노영민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노영민 / 민주통합당 의원(노영민)
- "각 후보 캠프가 이것은 김두관 후보 캠프가 내부적으로 교육한 문서고요, 이거는 손학규 후보 캠프가 내부적으로 올린 거고요, 이거는 정세균 캠프가 한 겁니다. 여기 보면 '끝까지 해야 합니다. 절대로 중간에서 끊으면 무효가 됩니다'라고 내부적으로 교육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교육을 사실은…. 문재인 후보 측은 이건 몰랐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교육하지 못했는데 타 캠프에서는 모두가 끝까지 해야 투표가 성립된다는 것을 교육을 한겁니다."
어쨌든 비문 후보 3인의 경선 불참에 놀란 당 선관위는 부랴부랴 타협안을 내놨습니다.
'끝까지 듣지 않고 투표하면 무효처리된다', '삐 하는 안내음이 나오고서 투표해달라'는 문구를 추가했습니다.
또 후보 이름을 부르는 순서도 순환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전화를 끊어도 유효표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는 거부했습니다.
시스템을 수정하면 안정성 검증을 할 시간이 부족하고, 뒷번호 후보가 불리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어쩌면 비문 후보 3인의 경선 불참은 '이해찬 당대표 - 박지원 원내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경선 시작 전부터 '이해찬-박지원 체제'가 문재인 후보를 밀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기 때문입니다.
소문대로 된 걸까요?
문재인 후보가 제주와 울산에서 57.3%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하자, 비문 후보로서는 분위기 반전 카드가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이 반전 카드가 경선 불참일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비문 후보들의 경선 불참이 계속되면 민주통합당은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지자들은 등을 돌릴 게 뻔하고, 당내 경선 흥행을 통해 지지세를 모으고, 그 힘으로 안철수 원장과 후보단일화에서도 승리하겠다는 민주통합당의 꿈은 정말 꿈으로 그칠지도 모릅니다.
각 후보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손학규 후보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 불복해 탈당까지 한 터라 이번 경선 불복은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두관 후보 역시 첫 대선 도전에서 '경선 불복'이라는 영원한 꼬리표를 달게 되는 셈입니다.
다만, 정세균 후보 쪽은 어떤 식으로든 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선 투표 진출 가능성이 작아진 터라 무리하게 경선 불참을 고집하기보다는 경선 참여를 통해 차후 킹메이커 또는 당권 장악을 노리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당으로서도, 각 후보 개인으로서도 경선 파행은 큰 불행이라는 게 당 안팎의 얘기입니다.
▶ 인터뷰 : 박지원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 "이유를 막론하고 당사에 염려를 미쳐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국민은 민주통합당에 정권을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보다 철저한 준비를 해서 정권교체 노력하겠다는 전화위복으로 삼겠습니다."
그러나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이런 실망스런 모습은 유권자들 뇌리 속에 또렷이 기억될 겁니다.
그래서 또 의문점을 던지게 할지도 모릅니다.
'민주통합당이 정말 정권을 잡을 능력이 되나'하는 근본적 물음 말입니다.
그동안 많은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이 패할 수밖에 없었던 그 물음을 민주통합당 스스로 다시 유권자에게 되새김질하고 있는 셈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hokim@mbn.co.kr] MBN 뉴스 M(월~금, 오후 3~5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