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은 딱 엿새 만에 일어났습니다.
도대체 이 6일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일장춘몽, 한바탕 꿈을 꾼 것일까요?
시계를 되돌려보겠습니다.
지난 6일 낮 12시쯤 북한은 갑자기 남북 회담을 제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튿날 이를 장관급 회담으로 하자고 역제의했습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 (6월6일)
- "6·15를 계기로 개성공업지구 지구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북남 당국 사이의 회담을 할 것을 제의한다."
▶ 인터뷰 : 류길재 / 통일부 장관(6월7일)
-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문제 등 남북 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남북 장관급 회담을 12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한다."
실무접촉 시기와 장소를 놓고 기 싸움이 벌어지긴 했지만, 회담이 깨질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각 미 캘리포니아에서 만나 미 중 정상은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재확인했습니다.
'아! 북한이 이제 매달릴 곳은 우리밖에 없구나'하는 착각 아닌 착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회담 개최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다들 믿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실무접촉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약간의 우려감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수석 대표의 격을 놓고 공방이 오갈 때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양측은 실무접촉에서 합의문을 내놓지 못하고, 각자의 입장을 담은 발표문을 따로따로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길 보시죠.
발표문 3항에서 우리 쪽은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을 의제로 정했지만, 북한은 여기에 6.15 행사와 7.4 공동성명 기념행사를 추가했습니다.
4항에서 수석대표의 격을 우리는 사실상 장관급으로 명시했고, 북한은 상급 당국자로 명시했습니다.
사실문제가 된 건 3항보다는 4항 수석대표의 격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격이 맞아야 상호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끝내 김양건 통전부장이나 다른 장관급을 보내지 않을 것을 눈치 챈 우리는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보내겠다며 북한에 통보했습니다.
북측은 생소한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수석대표로 통보했습니다.
회담 하루 전인 11일 오후 1시 평양에서 출발하려던 북측 대표단은 발길을 멈추고 회담 보류를 통보했습니다.
우리 쪽 수석 대표급이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 인터뷰 : 김형석 / 통일부 대변인(6월11일)
- "(북한이) 우리 측에서 장관급이 나오지 않으면 남북당국회담이 열릴 수 없다는 뜻을 통보해왔습니다."
북한은 그 이후로 남북 연락관의 통신도 끊었습니다.
6년을 기다려온 장관급 회담이 무산되기까지 딱 6일 걸렸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오늘부터 다시 격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 인터뷰 : 북한 조평통 대변인
- "남측이 처음부터 장관급회담을 주장하고 통일부 장관을 내보낼 의향이라고 했음에도 회담 개최 직전 수석대표를 아랫급으로 바꾼 것은 남북 대화 역사에 일찍이 없는 무례의 극치이다.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회담 대표로 요구한 것은 우리 체제에 대한 무식과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남북당국회담에 털끝만 한 미련도 가지지 않는다."
마치 다시 과거로 돌아간 듯합니다.
북한은 실무접촉 과정을 공개하며 모든 잘못이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일부는 북한이 내용을 왜곡해 공개한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 무산을 양비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북한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언론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북한이 회담에 대해 털끝만 한 미련도 없다 하고, 우리 역시 수석대표격을 수정해 제의할 뜻이 없다고 하니 당분간 냉각기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2001년 6차 남북장관급 회담은 북한이 회담장소를 금강산으로 고집하면서 파탄 났고, 우리가 북측 요구를 수용해 보름 만에 재개됐습니다.
그러나 2001년 5차 남북 장관급 회담은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대북 강경책에 대한 불만으로 당일 아침 무산을 통보했고, 복귀까지 6개월이 걸렸습니다.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06년 장관급 회담 역시 재개되는 데 24일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달 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야 남북 장관급 회담이 다시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때까지 남·북은 치열한 수 싸움과 주변국에 대한 외교전을 펼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수 싸움과 외교전에서도 우리가 북한보다 한 수 위고, 주변국 역시 심지어 중국조차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을 편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시간은 우리 편인 셈입니다.
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결국 성공할까요? 아니면 더 없는 시련에 직면할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