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 <매경DB> |
상도동계는 김 전 대통령이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며 대권에 도전할 때 형성돼 민주화투쟁에서 동고동락했고, 김 전 대통령의 집권과 퇴임 후까지 영욕의 세월을 함께 했다. 상도동계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은 최형우 전 내무부장관과 故김동영 전 정무장관이다. 이들은 이른바 ‘좌동영, 우형우’로 불리는 상도동계 최측근 라인이다. 동국대학교 동문인 두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평생을 바쳤다. 특히 김 전 장관이 최재구 전 신한국당 상임고문의 소개로 김 전 대통령과 만난 1960년은 상도동계가 태동한 시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첫 만남에서부터 ‘우직한 인물’로 평가받았다고 알려진 것처럼 그는 상도동계에서도 ‘뚝심의 정치인’으로 불렸다. 김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을 누구보다 열망했지만, 1992년 대선을 불과 1년 남기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 앞에서 ‘대들 수 있는’ 최측근 참모로 일컬어지며, 상도동계의 맏형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기 전 갑작스레 뇌졸중으로 쓰러져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상도동계의 또다른 대표인사로는 ‘조직의 귀재’로 불리던 故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과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있다. 특히 문민정부 초대 청와대비서실장을 지낸 박 전 의장은 가신그룹 핵심멤버로 꼽힌다.
상도동계는 현재 정치권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물러난 1998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치를 좌우하고 있는 상당수 유력인사들이 상도동계 계보에 이름을 올려놓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의 유력주자인 김무성 대표는 상도동계의 ‘막내’로 통한다. 김 대표는 상도동계가 동교동계와 함께 결성한 민주화추진협의회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1987년에는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 1992년엔 대통령후보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 문민정부에서도 대통령민정비서관과 사정1비서관, 내무부차관을 겨쳤고, 1996년 15대 총선 때 여의도에 입성했다. 김 대표는 이날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도 고인을 ‘정치적 대부’라고 말하며 상주와 마찬가지로 조문객을 맞았다. 여권 내 친박계의 좌장으로 김 대표와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서청원 최고위원도 ‘상도동계’에 정치의 뿌리를 두고 있다. 서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문민정부에서도 정무제1장관, 신한국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이밖에 김덕룡 전 대통령 국민통합 특보와 이병석·정병국 새누리당 의원도 대표적인 상도동계 인물로 꼽힌다.
상도동계는 아니지만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서 활동한 유력 인사도 상당수다. 한때 야당의 대권주자로 꼽혔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진보개혁 성향의 교수로 강단에 섰던 그는 1993년 경기 광명 보궐선서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뱃지를 달았다. 이어 문민정부에서 보건복지부장관도 지냈다. 15대 총선 당시 개혁적 진보성향으로 분류돼 여당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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