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람 몇 명 데려다 쓰면 ‘종파’분자로, 어전회의때 깜빡 졸기라도 하면 ‘불경죄’로 목이 달아나는 판이라 중간간부들이 고위직 승진을 마다하고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현재 평양 안팎에서 일어나는 당·군·정 중간간부들의 복지부동 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 이후 주요인사들에 대한 무자비한 처형·숙청의 칼을 쉬지않고 휘두르자 스스로 입신양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중간간부들의 탈북사례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국가정보원·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료를 살펴보면 북한은 △2012년 17명 △2013년 10명 △2014년 41명 △2015년 30여 명 등 총 100여 명을 처형·숙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고위 간부들에 대한 처형과 숙청은 존재했다. 이같은 충격요법은 1인 독재체재를 지탱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소하고 ‘쪼잔한’ 이유로 목숨을 뺏는 일은 없었다고 탈북 지식인들은 입을 모았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정책적 실패보다는) 개인적 감정에 근거한 숙청이 많았다”며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권력이 과다한 사람은 제거하고 자기에게 위협적이지 않다고 보는 사람은 강등·복귀를 반복하면서 권력을 강화하는 통치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실장은 “김정은이 나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노회한 간부들이 경험이 부족한 사진을 무시·이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같은 분석을 가장 극명하게 뒷받침하는 것이 지난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영결식 당시 운구차를 호위했던 8인방의 운명이다. 당시 운구차 곁을 지켰던 8명 가운데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이하 당시 직위)과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은 각각 불귀의 객이 됐다. 또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인민군 총청치국 제1부국장 등은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현재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사람은 김 제1비서를 빼면 평양의 괴벨스’로 통하는 김기남 노동당 선전선동 담당비서와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 2명 뿐이다.
김 제1비서는 현재 핵심실세 그룹을 지난 2013년 장성택 처형을 결정했던 이른바 백두산 삼지연 회의 8인방 등 50~60대 주자로 채우며 나름의 세대교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제1비서는 집권 이후 처형·숙청을 추진하면서 향후 잠재적 위협요인이 될 수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덧붙여 망신을 줬다. 이어 본보기를 보이듯 여타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사총(대공포)나 박격포 등을 동원해 처형한 뒤 참관자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결의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이달 처형된) 리영길 총참모장과 같은 야전군 출신들은 실제 병력을 지휘할 수 있고 장기간 재직하다 보니 따르는 무리들도 있기에 김정은 제1비서는 이들 권력을 꺾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당료 출신 간부들이 임명권을 좌지우지 하거나 군내 주요 정책에 관여하면서 리영길을 비롯한 야전 군인들이 불만을 표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 제1비서는 군 장성들에 대해서도 특유의 ‘롤러코스터’식 승진·강등 인사를 구사하며 군부를 휘어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정천 부총참모장은 2013년 초 중장(별 둘) 계급장을 단 뒤 2년여 동안 중장과 상장(별 셋)을 오르내리다 지난해 2월에 소장(별 하나)으로 강등됐다 최근 복권됐다.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은 2010년부터 대장(별넷)과 상장을 오르내리다 2014년 12월 상장에서 소장으로 2계급 강등됐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역시 2012년 7월 차수(대장과 원수 사이 계급)에서 석 달 뒤 대장으로 내려갔다가 이듬해 5월 해임됐으나 2014년 6월 대장으로 복귀해 처형됐다. 대장 계급장을 달고 있던 김영철 정찰총국장도 2012년 11월 해임됐다가 이듬해 2월 대장으로 다시 복귀했고 현재는 노동당 최고위급인 당 비서직에 올랐다.
김 제1비서는 군부 서열 1·2·3인 총정치국장,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도 입맛대로 갈아치웠다. 그는 지난 2012년 김영춘을 시작으로 지난 4년간 김정각, 김격식, 장정남, 현영철, 박영식 순으로 6명의 인민무력부장을 임명하고 해임했다. 김일성 주석이 46년간 5명, 김정일 위원장이 17년간 딱 3명만 쓴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극명하다. 농구광으로
정 실장은 “다른 분야보다 군부 교체가 많은 것은 김정은식 숙청 패턴”며 “체제에 유일하게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이 군부이니 일반 노동당 간부들보다 훨씬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성훈·[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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