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는 김정남의 시신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17일 김정남의 시신을 인도받으려는 측은 유족의 DNA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압둘 사마흐 마트 셀랑고르 경찰서장은 "이제까지는 어떤 유족이나 친족도 신원을 확인하거나 시신을 요구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사망자 프로필과 맞는 가족 구성원의 DNA의 샘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은 시신 인도 요청서를 제출했다"면서도 "우리는 시신을 인계하기 전에 이 시신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확인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앞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북한이 김씨 시신 인도를 요구했다고 확인하고, 인계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날 셀랑고르 경찰서장의 DNA 발언으로 김씨 시신이 북한이 아닌 중국의 유족들에게 인도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경우 북한 측과 유가족은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의 시신을 두고 예측이 줄다리기를 벌일 수도 있다.
앞서 김정남의 둘째 부인인 이혜경이 남편 시신의 인도를 위해 중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말레이시아 매체 프리말레이시아투데이(FMT)는 이혜경이 김정남의 시신을 넘겨받도록 해달라며 말레이시아 주재 중국 대사관을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김정남의 본처와 아들 1명은 현재 중국 베이징에, 후처 이혜경과 한솔·솔희 남매는 마카오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말레이시아 현지 소식통은 매일경제 기자에게 "이미 말레이 부총리가 김정남 시신을 북한에 인도하겠다고 밝혔고 김정남 신분을 확인한 이상 북한 대사관에 시신을 넘기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며 "DNA 테스트는 일종의 형식 절차로 가족이 따로 나타나지 않을 경우 대사관에 시신을 넘기는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김씨 시신의 부검을 15일 마쳤으며 결과는 주말께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말레이시아 과학기술혁신부(MOSTI) 산하 화학국이 경찰로부터 김정남 부검 결과 얻은 샘플을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지 매체 더스타 온라인은 이날 현지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3개국에 북한 정찰총국의 네트워크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찰총국 요원들은 엔지니어나 식당 주인 등으로 신분을 숨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북측 요원들은 북한 식당을 정보수집 장소로 활용해왔다. 심지어 정찰총국은 자카르타를 포함한 인도네시아 주요 도시에서 직물공장까지 운영했다
정찰총국은 2000년대 초반 거래가 금지된 화학약품을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여가는 경로로 말레이시아를 활용하기도 했다.
[쿠알라룸푸르 = 박태인 기자 / 서울 =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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