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선주자들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을 '국민승리' '헌법가치 수호'로 평가하면서도 '환영' 입장은 자제하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 파면은 당연한 결정이지만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불명예 사태가 발생한 만큼 언행을 절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각 주자들은 당분간 선거캠페인은 자제하면서 국민통합행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박 대통령의 파면 결정에 대해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숭고하고 준엄한 가치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여의도 경선캠프 사무실에서 박광온 수석대변인이 대독한 입장문을 통해 이같이 언급한 뒤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역사는 전진한다. 대한민국은 이 새롭고 놀라운 경험 위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제 나라를 걱정했던 모든 마음이 하나로 모여야 한다"며 "전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기록될 평화로운 광장의 힘이 통합의 힘으로 승화될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러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표의 입장문에는 '승리' '환영' '감사' 이런 표현이 없다"면서 "그만큼 현직 대통령 파면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TV로 헌재 심판 결과를 지켜본 문 전 대표는 파면 결정을 확인한 뒤 팽목항을 방문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문 전 대표는 팽목항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만남은 비공개로 진행되며 수행인원도 임종석 비서실장 1명으로 최소화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팽목항에서 1박을 한 뒤 11일에는 광주를 방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이날 발표한 입장문에서 "이제 반목과 갈등의 시대를 끝내고, 대한민국 모두가 화합하고 통합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며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안 지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대한민국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며 "그동안의 모순과 갈등을 뛰어넘고 모두 하나 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그동안 촛불을 들었던 분이나 태극기를 들고 나왔던 분, 진보와 보수, 남녀노소, 영호남, 그리고 재벌과 노동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박 대통령 파면은 정당하지만 국가적으로는 불행한 일이라는 신중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헌재의 결정은 당연한 결정이다. 누구도 헌법과 법률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면서도 "대한민국 헌정사에 있어 오늘의 불행한 사태에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촛불집회와 거리를 둬왔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안 전 대표는 "이 시간 기뻐하는 국민들이 있는가 하면, 상실감을 가진 국민들도 계시다"면서 "이들 모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이다. 정치권이 갈라진 국민들 마음을 하나로 묶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비폭력 촛불 시민혁명은 민주주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위대한 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국민들을 추켜세우기도 했다.
반면 지난 19차례의 촛불집회에 모두 참석했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 대통령 탄핵에서 멈출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이날 입장발표문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 기득권체제를 완전히 허물어야 한다. 권력자가 아닌 세상을 교체하자"며 "기득권체제를 철저히 청산해야 진정한 통합이 되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야 화합의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했다.
정의당 대선후보인 심상정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명령을 요구하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수사를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심 대표는 헌재 심판 직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핵심 피의자"라며 "검찰은 즉각 출국금지명령을 내리고 소환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은 특검으로부터 인계받은 모든 수사 내용에 대해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며 "황교안 권한대행은 지금부터 공정한 선거관리에만 집중하라"고 요구했다.
범여권 주자들 사이에선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 분열·대립을 끝내자"는 입장이 주를 이뤘다.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진심으로 승복을 말씀해주고 화해와 통합을 말씀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유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들이 뭐라고 해도 대통령을 생각하면 저는 인간적으로 깊은 회한과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프다. 이 나라를 위해, 또 대통령을 위해 저는 진심으로 마지막 호소를 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한 대표 친박 정치인이었지만,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박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안팎의 거센 도전 속에 안보와 경제가 뿌리 채 흔들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제 생각이 달라도 더 큰 애국심으로 서로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화해하자"고 강조했다.
바른정당의 또다른 대선주자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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