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첫 방한 일정으로 비무장지대(DMZ)를 선택했다. 판문점은 남북분단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고 지척에 북한의 도끼만행 지점이 있다. 틸러슨 장관의 이같은 행보는 북한의 도발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무장지대 공동경비구역(JSA)의 한·미 연합경비대대가 주둔하는 부대 명칭인 캠프 보니파스는 북한 도끼만행으로 순직한 당시 경비대장 아서 보니파스 대위(소령으로 추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틸러슨 장관의 아시아 순방 일정은 일본과 한국을 거쳐 중국에서 마무리된다. 사드 등 안보문제 및 무역역조 등 미·중 관계 재설정을 위한 한미일 3국의 전열을 정비하기 위한 방문 일정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은 4월초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초전 성격의 외교장관 회담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한미 외교장관회담은 이에 앞선 '작전회의' 성격도 일부 갖고 있다.
윤 장관은 지난해 3월초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결의 2270호 채택 이후 한미 간에 긴밀히 보조를 맞춰온 대북 제재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이 미국이 중국에 대해 쓸 수 있는 대표적인 카드로 꼽히는 가운데 틸러슨 장관이 방중 기간에 이 내용이 협의될 지도 주목된다.
틸러슨 장관은 한·중·일 순방의 첫 방문국인 일본에서 "우리는 20년간 실패한 접근을 했다"며 "미국이 북한이 다른 길을 가도록 독려하기 위해 13억 5천 달러(약 1조 5272억 원)를 제공한 기간을 포함한다"고 말해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가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 지난 20년간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한 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틸러슨 장관이 언급한 13억 5000만달러에 대해 마크 토너 미국 국무부 대변인 대행은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1995년부터 2008년까지 14년 동안 북한에 지원한 총액"이라며 "50%가 식량 지원, 40%가 에너지 지원이었다"고 설명했다. 북핵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제네바 북미기본합의(1994), 9·19공동성명(2005) 등이 도출됐던 빌 클린턴-조지 W부시 정권의 대북 협상사를 틸러슨은 '실패'로 규정한 셈이었다.
한편 동북아 순방에 나선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한국, 일본 방문 일정에는 미묘한 차이가 보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틸러슨 장관이 전날 일본 방문 일정과 한국에서의 일정을 비교하면 미묘한 차이도 관측됐다. 틸러슨 장관은 16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한 데 이어 약 1시간 동안 업무 협의를 겸한 만찬을 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공동 만찬일정이 없다.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없는 비무장지대(DMZ) 방문 일정이 있지만, 양국 외교장관 간에 스킨십을 만들 수 있는 만찬 일정이 한국에서는 없다는 점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에 한국의 탄핵 상황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개월 후면 한국 정부가 교체되고, 틸러슨의 카운터파트도 바뀔 가능성이 큰 점을 감안한
하지만 한국의 탄핵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귀'를 선점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안부 문제 등 한일간의 갈등 현안에서 틸러슨 장관이 일본의 입장 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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