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 내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불가피론'이 번져가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연일 대북 강경 메시지를 쏟아내고 워싱턴 조야에서 대북 선제타격이 거론되며 역내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자 캠프 내에서도 문 후보가 사드 배치 이행이란 단호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 후보가 사드 배치에 있어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합의 이행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안보 불안'을 겪는 유권자에게 외면 당해 다시 대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캠프 내의 이런 목소리는 차기 정부에서 사드 배치 재검토와 국회 비준을 주장하는 송영길 문재인 캠프 총괄본부장 등 일부 캠프 핵심 인사에 의해 문 후보의 귀에 닿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송 본부장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차기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고 국회 비준을 거친다는 문 후보와 캠프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것이 후보의 철학이고 우리의 입장이다"라며 "캠프 내부의 일부 이견이 있지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달리 사드와 관련한 문 후보의 입장은 일관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캠프 내에서 이런 송 본부장의 의견에 아쉬움을 표하는 인사들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외교·안보 현안에서 전문 외교관 출신이 아닌 비전문가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문 후보가 엄중한 현실에 처한 향후 한반도 정세를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후보에게 외교안보 자문을 하고 있는 한 전직 외교관은 "사드 배치 철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선이 안보 정국으로 넘어가며 문 후보에게 사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요구하고 있다"며 "하지만 핵심 인사들에 의해 번번히 막히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 외교관은 "안보 정국은 문 후보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이면 문 후보는 또 다시 패배할 수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이런 목소리는 전직 외교관 출신으로 구성된 문 후보 외교안보 자문그룹 '국민아그레망' 소속 일부 대사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아그레망 소속의 한 전직 대사는 "문 후보가 집권한다고 해도 사드 배치 철회는 불가능하다. 현재와 같은 국제 정세에서 사드를 되돌릴 수는 없다"며 "대선이 얼마 남은 않은 상황에서 정책을 선회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대사는 "캠프 내부에서 사드 배치에 관한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배치 재검토를 하기가 만만치 않은 것도 안다. 하지만 후보의 철학과 입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문 후보의 의견을 지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문 후보가 사드 배치에 있어 한미동맹을 중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사드 이행에 대한 문 후보의 입장을 드러낸 부분이라 생각해달라"고 밝혔다.
현재 국민아그레망에서 간사를 맡고 있는 조병제 전 말레이시아 대사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캠프 내의 갈등설에 "사실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조 대사는 "사드 배치의 절차적 측면에서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것은 상당한 문제 아니냐?"며 "동유럽 국가에도 이런 무기 체계가 배치될 때 국회의 비준을 거쳤다.사드 배치처럼 국익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는데 있어 보다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 후보의 입장"이라 전했다.
하지만 최근 안보 정국을 의식한 듯 문 후보는 사드 배치에 보다 강경한 입장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모습이다. 문 후보는 1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사드 보복 즉각 철회를 요청했고 사드 배치에 있어 "한미 동맹과 국가 이익, 국민 동의에 입각해 집권 후 최우선 현안으로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북핵 위협이 계속되면 사드 배치를 강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현재까지 19대 유력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사드 배치 '재검토'를 주장하는 대선 후보로 남아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사드 배치에 있어 충분한 설명이 없었고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뼈아픈 지적"이라면서도 "이미 사드가 들어온 상황에서 차기 정부에서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해 사드 배치를 철회하려 한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할 것"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