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산 역사'이었습니다.
대권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좌절, 그리고 마침내 대권을 쟁취하기까지 여정을 김재형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기자 】
1970년 대권을 향한 첫 도전은 시작됐습니다.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나란히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치열한 접전 끝에 대통령 후보로 지명됩니다.
「 여세를 몰아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호소력 있는 연설로 유권자들의 선풍적인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박정희 후보에게 아쉽게 패배합니다.
」
암울한 유신시대가 막을 내린 1980년 초 이른바 '서울의 봄'을 맞아 정치활동의 전면에 나섰지만, 신군부 정권이 등장하면서 1982년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3년 만인 1985년 미국에서 귀국한 김 전 대통령에게 또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물결 속에 군사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전격 수용했고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섭니다.
하지만, 야권의 후보단일화 실패가 또 좌절을 안겨줬습니다.
「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와의 단일화에 실패,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출마했지만,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
이듬해 총선에서 평화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도약하며 희망이 생기는 듯했지만, 1990년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상황은 급반전됐습니다.
「 거대여당인 민자당에 대항하기 위해 야권을 통합해 1992년 세 번째 대권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결과는 또 패배였습니다.
호남지역과 수도권에서의 우세에도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에게 패배하는 좌절을 맛보며 전격적인 정계은퇴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대권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3년 뒤 비난 속에서도 정계은퇴를 번복하며 정치 전면에 복귀합니다.
▶ 인터뷰 : 김대중 / 전 대통령
- "오늘 저는 참으로 고뇌에 찬 마음과 죄송한 심정으로 정계복귀에 대한 의사를 국민 여러분께 밝히는 바입니다."
새로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는 1996년 실시된 제15대 총선에서 곧바로 제1야당이 됐고 4번째 대권 도전의 발판이 됩니다.
「또,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충청지역의 맹주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며 마지막 승부수를 띄웁니다.
그리고 마침내 IMF 외환위기 속에 치러진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 인터뷰 : 김대중 / 전 대통령
- "오늘 우리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여야 간 정권교체라는 위업을 이룩했습니다."
3번의 패배와 한 번의 승리, 대권 4수생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산 역사'였습니다.
MBN뉴스 김재형입니다.
< Copyright ⓒ m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