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의 대한민국. 어떤 정당도 믿지 못하겠다는 국민들의 불안감과 성난 민심은 총선을 통해 확인됐고,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온 기둥 산업들은 줄줄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북한발 안보 불안은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저성장은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민들이 느끼는 공정함과 신뢰에 대한 결여, 희망의 상실이다. 성장의 기초가 되는 공정함과 투명 사회 건설에 몸을 던지는 리더 대신 권력만 탐하는 리더만 보이고, 대한민국의 위기를 헤쳐갈 만한 치밀한 시나리오나 믿음직한 리더십도 찾기 어렵다.
충무공 탄신일 하루 전인 27일 ‘이순신 리더십’ 연구 전문가인 지용희 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세종대 석좌교수)를 만났다. 지 교수는 30년이 넘는 이순신 연구를 통해 위인전 속의 성웅 이순신을 헌신적이면서도 탁월한 관료, 핵심 역량을 갖춘 훌륭한 경영인, 불굴의 의지와 신뢰를 꾸준히 보여주는 리더 등 입체적 모습으로 분석해 왔다.
백발의 노 교수가 진단하는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의 위기와 ‘이순신 리더십’이 대한민국에 던지는 교훈과 조언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순신 리더십이 위기의 대한민국에 던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순신의 탁월한 리더십은 전세계에 유례가 없다. 군량, 무기, 병력 등 전투와 전쟁에서 가장 기본적인 물자조달도 이순신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조정에는 이순신을 도와주기는 커녕 모함과 핍박하는 관리들이 가득했다. 실제로 이순신은 관직에서 여러차례 쫓겨났고 2차례 백의종군했다. 임진왜란은 7년간의 긴 전쟁이었고 동북아 세계대전으로 불릴만한 망국의 위기였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치밀한 전략과 리더십으로 국가를 구했다. 뛰어난 리더는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국가를 구하는 힘이 있다. 대한민국이 마주한 위기의 중대함을 얘기하기 전에 각 분야에서 올바른 리더십의 회복이 우선 필요하다.
-건국 이래 성장만 해온 대한민국이 변곡점에 있다. 뭘 준비해야 할까?
▶치밀한 위기대비 태세다. 이를 구체적으로는 표현하면 정교한 시나리오 경영이다. 정부와 기업은 이제 간절한 마음으로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는 저성장, 안보불안, 통일, 교육비 부담, 산업 경쟁력 약화, 취업난 등 각종 리스크와 변수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실천 가능한 메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형식적이어서는 안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5년 전만해도 해운 조선 분야의 삼각파도를 누가 상상했나. 위기에 대한 대응은 호들갑이나 단순한 허리띠 졸라매기, 국민이나 조직원에 대한 희생 강요와는 다른 것이다. 좋은 리더는 현실에 근거하고 창의력을 발휘해 가능성 있는 위기를 파악하고, 이에 대비하는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순신은 임란 1년 2개월전 임지에 부임해 밤잠을 자지 못하면서 전쟁에 치열하게 대비했다. 거북선에서의 첫 함포 발사도 전쟁 발발 하루 전에야 처음 성공했다.
-이순신이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한 예를 들어달라.
▶유성룡이 쓴 징비록을 보면 부하 장수들이 이순신의 예측 능력을 보고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따랐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일화로 든 것이 한산도에서 적과 대치할 때 왜군의 새벽 침투를 차단한 일이다. 달이 밝은 날 저녁, 왜군들의 기습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우리 수군의 방비가 느슨한 날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투구를 벗고 잠시 북을 베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냥 자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새벽에 갑자기 벌떡 일어난 그는 부하들을 깨워 왜군의 침투 경로를 역습하자고 했다. 모두 의아해 했지만 이순신의 예측대로 왜군은 새벽 깊은 시간, 밝은 달 때문에 생긴 해안선의 짙은 그림자를 따라 침투하다 호되게 당하고 물러났다. 물론 이순신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철저한 현실 파악을 기반으로 창의력을 발휘해 위기에 대응하는 시나리오를 순식간에 만들었다. 리더라면 이런 예측 능력, 집중력, 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저성장, 저출산, 기후변화, 안보, 통일, 글로벌 경제발 리스크에 대한 치밀한 시나리오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순신 리더십에서 우리 기업들이 배울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이순신 장군이 탁월한 리스크 관리자였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에게, 또 대한민국 기업에게 더 큰 위기가 계속 올 것이다. 위기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우호적인 환경은 준비를 통해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 정부가 가끔 30대 그룹을 불러서 ‘과감하게 투자해 달라’는 요청을 한다. 어불성설이다. 기업은 투자를 한번 잘못하면 망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다가 앉아서 망할 수도 없는 일이다. 기회가 보이거나, 이른바 ‘올 인’을 통해서 승부를 걸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과감하게 나아갈 자리와 물러나 있을 자리를 잘 구분하는 경영인이 훌륭한 기업인이다. 물론 이런 판단은 감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과 정보에 근거해야 한다. 좋은 리스크 관리를 병법 스타일로 설명하면 ‘이미 승리를 만들어 놓고 전쟁에 나선다’는 뜻의 선승구전(先勝救戰)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장수와 리더는 이길 수 있는 싸움에만 나서고, 불리한 싸움에는 나서지 말아야 한다.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선조나 당시 조정 대신들은 무조건 전투를 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이에 응하지 않은 이순신 장군은 모함을 받기도 했다. 이순신은 왜군이 무서워 전투를 피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무모한 싸움에 나서 패한다면 나라가 망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특정 기간 전투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리스크 관리를 잘한 경영인으로 누구를 꼽는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은 자서전을 통해 이미 삼성 성공의 비밀병기를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시나리오 수립에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신사업에 진출할 때 검토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실패가능성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얘기했다.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누구 한명의 의지나 감으로 사업을 시작하면 안된다. 실무자, 중간관리자, 최고위층 경영진 등 최소한 3번 철저하게 리스크와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한다.
-위기를 말하기 전에 리더십을 논하자 하셨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평가해 달라.
▶대한민국은 각 분야에서 리더십이 붕괴된 상태다. 리더십의 요체는 신뢰 자산의 크기다. 또 이 신뢰는 인격적·도적적인 투명성, 탁월한 핵심역량이라는 두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장군에게는 싸워 이기는 전투역량이 핵심역량이고, 경영인에게는 회사의 매출과 이익을 늘리는 경영 능력, 정치적 지도자에게는 사회를 통합하고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능력이 바로 핵심역량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가와 기업에는 신뢰 자산이 많은 리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공무원이자 경영인, 군인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에 머무르던 곳은 적과 대치한 최전선이었다. 그런데 많은 백성들이 이순신 장군이 있는 곳으로 오히려 모여들었다. 2가지 이유 때문이다. 백성들에게는 이순신 장군의 인격과 도덕성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또 장군으로서의 핵심역량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순신의 진중으로 가면 왜군에게 붙들리지 않고 살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신뢰의 자산이 큰 정치인이나 기업 오너를 찾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위기의 전조가 곳곳에서 보인다. 빨리 신뢰의 리더십을 회복할 방법이 있는가.
▶그게 문제다. 신뢰의 자산은 꾸준히 축적하는 것이지 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회사가 망할 위기가 왔는데 갑자기 오너나 사장이 “오늘부터 1년간 전 직원들이 모두 야근하고, 보너스도 반납해서 위기를 극복하자”라고 얘기한다고 생각해 봐라. 여기에 따를 직원이 우리 회사에 몇명이나 있을지, 장관의 경우 우리 부처에는 몇명이나 있을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요청을 받을 때 직원이나 공무원, 국민들은 2가지를 생각한다. 우선 ‘저 사람이 위기에서 우리를 구할 핵심 역량이 있는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저 사람이 우리에게 희생을 요청할 만큼 인격적·도적적으로 믿을 만한 사람인가’도 생각한다. 평소에 권력이나 자리를 탐하지 않고 국가와 회사를 위해 헌신한 사람인가,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은 사람인가 등 신뢰의 자산이 위기 때 리더십의 역량을 정확하게 평가하게 된다.
-이순신은 신뢰의 리더십을 어떻게 쌓았나.
▶평소에 진중에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이를 철저하게 실천했다. 사리사욕을 취하지 않고 공공을 앞세우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이다. 정치인에게는 권력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경영인에게는 개인적인 부가 아닌 회사와 종업원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눈에 정치인이 권력을 탐하는지 정말 국민들의 삶을 걱정하는지 다 보인다. 이런 헌신의 리더십 때문에 이순신의 불가사의한 독전(督戰)이 가능했다. 물론 12척으로 수백척과 대적한 명량해전 초반에는 이순신 장군 홀로 싸웠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적선을 격파하기 시작하자 뒤로 물러 있던 우리 수군도 함께 가세해 수백척을 대적해 싸웠다. 이건 세계 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예다. 수백척대 12척의 싸움이라면 99%의 경우 지휘관을 죽이고서라도 살기 위해 도망가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이건 부하들이 이순신에게 무한신뢰를 보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에서도 전투에서 도망가거나 후퇴하는 병사를 독전하다가 아군에 살해된 미군 지휘관의 수가 1000명이 넘는다는 얘기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리더, 회사의 리더들은 신뢰의 자산을 쌓기 시작해야 한다. 평소에 사리사욕을 취했던 리더가 “자, 이제 위기가 왔으니 같이 고생하자”고 하면 누가 그 사람을 따를까.
-사회 각 분야의 리더와 기업인에게 주고 싶은 조언은.
▶대한민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정말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신뢰와 공정함을 목숨처럼 여기고 다시 세워야 한다. 리더들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손실도 감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만연해 있는 갑질과 불공정을 빨리 퇴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순신 같은 인재를 사회 곳곳에서 발굴하려면 이순신 처럼 올 곧은 사람이 발탁될 수 있는 ‘이순신 생태계’가 구축 되어야 한다. 거짓말 하는 사람, 아첨하는 사람, 권력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출세하는 조직과 기관이 많아지면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기업인들도 경영인들도 반성해야 한다. 미국은 가장 존경 받는 사람이 가장 돈이 많은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다. 한국은 돈이 많으면 존경이 아니라 욕을 먹는다. 국민들이 배가 아파서 이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인과 그 가족들이 리더십을 보였으면 미움이 아니라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 ‘공정경제 포럼’을 만들어서 이순신의 리더십과 탐욕스럽고 왜곡된 자본주의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토대로 건강하게 발전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확산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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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리더십 연구의 권위자인 지용희 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세종대 석좌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를 신뢰 할만한 리더가 없는 결핍의 위기이자 공정성의 결여가 낳은 사회적 위기로 규정했다. <김은표 기자> |
-앞으로 이순신 리더십 연구에 대한 계획은?
▶내일(4월 28일)이 충무공 탄신일이다. 이순신 연구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노승석 박사 등 일행과 함께 아산
[김은표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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