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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김종태(66) 씨는 서울대에서 유학하던 1976년 간첩으로 몰렸습니다.
'조선총련' 산하단체에 가입해 활동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아 한국에 잠입했다는 혐의가 씌워졌습니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법원은 징역 10년을 선고했습니다.
김씨는 감옥에서 5년 10개월을 지내다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도쿄에서 무역회사 대표를 지내는 등 새 생활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습니다.
2012년 김씨는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에 뒤늦게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그해 12월 서울중앙지법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간첩 누명을 쓴 지 무려 36년 만이었습니다.
당시 재심 재판부의 최동렬 부장판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사법부를 대표해 사과드린다"고 사죄했습니다.
간첩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누명을 씌운 데다 청춘까지 앗아간 조국에 등을 질 법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조국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재일교포의 과거와 현재를 모국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재일교포를 바라보는 좋지 않은 인식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억울함을 느낀 배경에 그런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김씨는 고민 끝에 무죄 판결로 받은 배상금 일부를 재일교포 관련 연구 진흥을 위해 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재일교포 문학 연구자를 수소문하던 김씨는 같은 재일교포로 도쿄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고이삼 대표를 통해 김환기 동국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를 소개받았습니다.
김씨는 김 교수와 장충동 족발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기구하면서도 파란만장한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기부 의지도 내비쳤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이 몸담은 동국대 일본학연구소를 추천했습니다.
김씨는 3일 오후 동국대를 찾아 5천만원을 기부합니다.
김씨는 "기부금의 이름을 '재일 한국인·조선인 2세 문학기금'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김 교수는 전했습니다.
김 교수는 "김씨가 재일교포를 알
김 교수는 "20대 시절 청운의 꿈을 안고 모국에 와서 간첩 사건에 연루돼 조국을 버리고 싶었겠지만, 김 씨는 한국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뿌리를 지키겠다 생각했다"며 "김 씨의 깊은 뜻을 우리도 잘 보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