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형 간염 집단 발생 사태가 연이어 터지고 있지만 보건당국 대응은 여전히 주먹구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의료인에 대한 사법처리나 환자 보상은 물론, 역학조사의 우선순위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다 보니 피해자가 겪는 불안과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C형 간염을 국가 검진에 추가하고, 의료기관의 실태를 전수 조사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지만 정부대응은 늦어지고 있다.
24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옛 서울현대병원에서 발생한 C형 간염에 대한 원인 규명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JS병원으로 이름을 바꿔 각종 진료를 계속하고 있다. 현장조사 결과 C형 간염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아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내리지 못해 계속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인을 규명하고 질본 내 역학조사위원회 사례판정위원회를 거쳐야만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질본 관계자는 “워낙 많은 종류의 치료가 이뤄지다 보니 명확한 원인을 아직 찾지 못했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최종까지 원인을 밝혀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환자 보상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인이 규명된다 하더라도 보상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명확하지 않다. 의료기관의 명확한 실수가 규명돼도 양천구 다나의원과 원주한양정형외과의 경우 보상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나의원은 주사기 재사용이 C형 간염 전파에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들은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 개인적인 구제를 신청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다나의원 피해자들의 경우 현재 치료비를 모두 본인 돈으로 내고 있다”며 “병원으로부터 보상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원주한양정형외과는 자가혈주사시술(PRP) 과정과 C형 간염 전파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원주한양정형외과의 경우 보건복지부가 피해자를 우선 지원하고 법적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두 경우 모두 의료 기관의 진료 행위에 따른 문제점이 규명됐지만 법적 책임자의 생사여부에 따라 구제와 보상 방법이 달라졌다. 이번 사건은 서울현대병원이 5명의 의사가 번갈아 원장을 맡는 방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법적 책임자를 찾는 과정에서 계속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인에 대한 민사소송 뿐만 아니라 형사 처벌 규정도 명확하지 않다. 지난 5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형사처벌 규정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환자 1인에게만 상해가 발생해도 형법을 적용할 수 있는데도 ‘보건의료상 중대한 위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게 해 개정실익이 적다는 이유로 개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경우에도 대한의사협회가 해당 의사에 대한 회원 권리 정지나 고소·고발 등의 법적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보여 솜방망이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강력한 처벌을 기대하는 피해자와 국민들의 바람과 정반대다. 특히 다나의원과 원주정형외과 사태 이후 전국 병원을 전수 조사하지 않은 정부의 대응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다.
역학조사 과정에 있어서 우선 순위를 정하는 행정력도 후진적이다. 원주한양정형외과에서 역학조사 대상자 중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환자가 나와 다른 환자들의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 있었는데도 질본은 이번 1만여명의 역학조사 명단을 확보하고도 이 명단을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HIV 간염자와 아직 대조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질본 관계자는 “감염병 분야와 HIV 관리 부서가 다르다 보니 미처 명단을 대조해 보지 못했다”며 “이런 지적이 나온 만큼 환자 명단의 대조가 가능한 지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주사기 재사용이나 의약품 취급 잘못으로 대규모로 C형 간염되는 것은 결국 의료인의 윤리 의식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현재로선 병·의원이 돈벌이 목적으로 환자한테 모든 비용부담을 짊어지게 하고 각종 비급여 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시술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원가에서는 낮은 수가로 인한 낮은 수익을 보전하고자 신데렐라 주사니 마늘 주사니, 통증 치료 주사니, 비만 시술이니 하며 각종 비급여 시술을 만들어 오남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이나 SNS 등에선 전수조사를 통해 이런 문제점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C형간염 집단 감염이 뒤늦게 밝혀지는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는 C형간염에 대한 감시체계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C형 간염 표본 검사에서 벗어나 전수 검사를 하려면 법개정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며 “이번 건의 원인규명 절차가 끝나야 처벌에 관한 부분도 논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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