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을 끊어봤습니다 D-7
“선배. 연말인데 외로운 남녀 솔로기자 2명이 놀이동산에서 데이트하는 르포 어떨까요?”
사심가득한 발제는 결국 나를 찌르는 칼날이 됐다. 놀이동산이 정 가고 싶다면 ‘혼자’ 가라는 팀장의 지시에 훈훈한(?) 남자 선배와의 평일 분홍빛 데이트는 산산조각났다.
하지만 팀장의 말은 결국 혼자서라면 평일 오후 사무실에 앉아 쏟아지는 졸음을 참아내며 기사를 쓰는 대신 놀이동산을 갈 수 있다는 얘기. 회사 법인카드를 받아 자유이용권도 끊을 수 있다. 팀장의 말에 ‘콜!’을 외쳤고, 회의 시간에 얼떨걸에 건넨 ‘반 농담’은 ‘기획 아이디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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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말 하라고요? |
◆ 청문회로 몸살인데 난 놀이동산에 가도 될까? D-1
광화문광장에 촛불이 켜진 뒤 주말을 반납한지 오래. 한 달에 주말 당직이 없는 건 단 한 주. 하루 건너 새로운 뉴스가 터지는 이 시국에 놀이동산을 가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매일같이 혼술을 즐기는 나이지만, 과연 혼자 놀이동산에 가서 즐길 수 있을 것인가. 갖은 고민으로 머리를 부여잡다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가까워졌다. “마지막으로 누구랑 놀이동산에 갔더라. 아···으흠, 잘 사나?” 감상에 젖어 도저히 집에 바로 들어갈 수 없었다. 친구를 불러 가볍게(?) 소맥을 탔다. 그래 지금 이 술이 덜 깬 상태라면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다.
◆D-day 회사-롯데월드 입구
혼자 놀이동산 가기에 도전하기로 한 당일. 비장한 표정으로 데스크에게 법인카드를 받았다. 해장 대신 감성을 택해 회사 근처 코인노래방을 먼저 찾았다. 혼자 구슬픈 발라드 12곡을 부르고 나니 ‘파워솔로력’이 충전됐다.
롯데월드 입구에서 나와 같이 성인 1명 자유이용권을 구입한 20대 중반 여성이 눈이 들어오자 혼자 놀이동산에 간다는 취재 목적은 뒷전이고 같이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빛의 속도로 자유이용권을 끊어 그를 쫓았다.
“저기요, 제가 혼자 놀이동산 가기를 취재하고 있는데 혹시 혼자 오게 되신 계기를 알 수 있을까요?”(낯선 이에게 서스럼없이 말을 걸 수 있는 기자란 참 좋은 직업이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딱 잘라 말했다. “놀이동산 안에 남자친구 있어요.”
결국 나는 회사에서도 잘 하고 다니지 않는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이건 일이다!’ 사원증에 롯데월드 자유이용권을 우겨넣었다.
◆미션 1. 혼자 타도 어색하지 않은 놀이기구를 찾아라
평일 오후라 사람이 적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을 중심으로 놀이동산은 터져나갈 듯했다. 연말을 맞아 연차를 내고 아이와 함께 놀이동산을 찾은 듯한 직장인 부부도 많이 보였다.
‘후렌치 레볼루션 2 VR 대기시간 140분’ 혼자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모자라 장시간 멀뚱멀뚱 서있을 자신이 없어 과감히 포기했다. 첫 선택은 바이킹이었다.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이킹의 VIP석이라 할 수 있는 맨 뒤 맨 끝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고등학생 3명이 뒤로 와서 한 명이 내 옆에 앉았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누나가 츄러스라도 하나 사주고 싶었달까.
생전 처음보는 고등학생 옆에서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바이킹을 타니(기자는 선천적으로 리액션이 커서 이를 숨길 수 없었다) 입구에서 위축됐던 ‘솔로력’이 충전되기 시작했다. 놀이동산 가고 싶을 때, 스릴을 즐기며 미친듯이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최대한 혼자 온 게 신경쓰이지 않으며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없을까.
순간 원형 탁자가 생각났다. 솔로든 커플이든 가족이든 직장인이든 모두가 평등한 위치라는 것을 상징하는 원형 탁자 말이다. 자이로스윙, 자이로드롭, 자이로스핀 나이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바람을 가르며 빙빙도는 놀이기구를 차례로 타니 이까짓것 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제 슬슬 아틀란티스, 혜성특급, 자이언트루프 같은 2명이 앉는 놀이기구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2인용 놀이기구는 성인커플이 줄서있는 경우가 많아 솔로로서 못볼 꼴을 보는 경우가 많다. 뺨을 쓰다듬는 건 기본. 뽀뽀를 안하는 커플에겐 진심으로 감사할 정도다.
이 경우 눈을 질끈 감기보다는 롯데월드에서 제공하는 모바일 ‘매직패스’를 이용하면 된다. 매직패스는 자유이용권 1장당 3개가 제공되며 지정된 시간에 예약하면 약 60분가까이 대기해야하는 놀이기구를 대기없이 바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오래 기다린 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회전목마나 회전그네와 같이 빙빙도는 놀이기구도 혼자타기 꽤 괜찮다. 일행과 일자로 앉지 않는 구조인데다가 멍 때리면서 롯데월드의 풍경을 빙빙돌며 감상하는 느낌이 가슴을 울렸다. 한 줄에 5명씩 타는 번지드롭 역시 자연스럽게 무리에 녹아들어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
◆미션 2. 놀이동산 혼술장소를 찾아라
놀이기구를 10개 넘게 타며 완벽히 적응할 무렵 목이 터져라 지른 비명에 슬슬 목이 아팠다. 그래 맞다. 술을 먹을 타이밍이다. 롯데월드 좌판을 뒤지며 태이크아웃 맥주를 파는 곳을 찾아헤맸다.
“음주 후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위험합니다.” “아, 제가 혼술취재중이라···” 모자란 술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채우고자 야외로 나가자 혜성특급과 자이로스핀 근처에 맥주가 그려진 밥 집 몇개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눈에 들어왔다. 혼술혼밥 좀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혼술은 바 형태의 자리에 앉거나 멍하니 바다나 물가 풍경을 바라 볼 수 있는 장소가 최고다.
‘카페 LAKE’라는 가게 이름처럼 호반보트가 항해하는 호수를 바라보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이곳은 칼바람을 뚫고 놀이기구를 타느라 꽁꽁언 기자의 마음을 그대로 녹여줬다. 혼밥러들이 저녁을 가장 먹기 좋은 타이밍인 저녁 5시, 카페 2층으로 올라갔을 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가 바로 옆에 위치한 술 마시기 딱 좋은 2인석에 앉았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의외로 혼자 이 가게를 찾는 이들은 하루 1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다만 카페의 특성상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아이들을 기다리는 선생님, 놀이기구에 지친 아빠들이 대다수라고. 일행없이 혼자 놀러 오는 사람은 없냐고 물으니 “글쎄요, 처음인 거 같아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창문 옆에서 강과 자이로스핀을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는 정말 최고였다.
◆미션 3. 알콜 기운으로 야간개장 홀로 즐기기
원래는 오후 6시에는 이곳을 뜰 계획이었지만 술기운과 놀이동산의 화려한 야경에 아득해진 기자는 이 기분에 좀 더 취해보기로 했다. 평소라면 코웃음쳤겠지만 맥주를 한 잔 걸친 후에 보는 3D 공포체험 영화는 꽤 오싹했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든 직원도 눈에 들어왔다. 한 장에 3000원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그낭 지나치기에 롯데월드의 매직캐슬은 아름다웠고 저 풍경에 나를 함께 담을 셀카봉은 갖고 있지 않았다. 결국 폴라로이드 순서를 기다리는 커플들 사이에 껴서 10여분을 기다린 뒤에 혼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직원의 사진솜씨가 좋아 꽤 만족스러웠다.
환상적인 야간 퍼레이드를 즐긴 후 다이너믹 시어터, 슈팅시어터, 열기구를 끝으로 놀이동산을 마감했다. 혼자 줄을 서고 있자니 직원들이 “중간에 지인 합류 안 된다”며 어깃장을 놨다. 그들의 사명감이 나를 두 번 죽인 셈이다. 그리고 이어진 안내방송 “이 놀이기구는 최소 4명부터 최대 6명까지 탑승하겠습니다.” 앞뒤를 살폈다. 내 앞뒤로 커플이 2쌍 이들과 함께 꼼짝없이 5명이 열기구를 타게 될 운명이었다.
혼자 롯데월드를 찾아 열기구를 타기가 우려스럽다면 4층으로 향해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열기구와 같이 지상을 다니는 모노레일은 열기구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어 긴 기다림없이 탈 만하다.
혼자 놀이동산을 즐긴 후 귀가해 집 근처에서 필라테스와 공원산책을 하고 알차게 하루를 마무리한 그날 집에 들어가 죽은듯이 잠을 청했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건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셀프 Q&A
-롯데월드에 혼자 가보니 어떤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만약에 추가 취재가 필요하다는 지시가 내려온다면 주저없이 떠나겠다.
-사람들이 관심이 많던가.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더라. 다만 2명짜리 놀이기구에 앉아 있을때 시선이 몰리는게 느껴진다. MP3나 핸드폰도 다 두고 타야해서 시선을 어디로 돌려야할지.
-혼자 온 동지를 찾아 작업을 걸어보겠다는 포부가 컸는데.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말 일행없이 순수하게 혼자와서 놀이기구까지 타는 사람은 연령 성별을 막론하고 아무도 없더라. 잠실역에서 꼬셔서 데려오는 게 빠르겠다.
-줄서서 심심할 때 주로 무엇을 했나
셀카를 찍어 내근 중인 선배들에게 보냈다. 물론 보고용이다.(선배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절대 혼자 타서는 안 되는 놀이기구가 있다면.
‘신밧드의 모험’이다. 인기가 없어 4명이 앉을 수 있는 그 자리에 나 혼자 배치하더라. 스토리는 지루하며 운행 속도도 느리다. 후룸라이드가 차라리 낫다. 빙빙 도는 컵은 도저히 용기가 안나서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던데.
배낭을 맨 나를 삿대질하며 ‘수능 끝나고 혼자왔나봐 친구없나?’라고 말한 사람이다. 솔로를 넘어 왕따로 보인건 상당히 억울했지만 수능끝난 고등학생으로 봐준 건 감사하다. 연락하면 술 사겠다.(술 마셔도 되는 나이겠지?)
[디지털뉴스국 김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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