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 92일만이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1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에서 사건번호 '2016헌나1'(대통령 탄핵)에 대한 선고 결과를 낭독했다.
이 권한대행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하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서 "대통령은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의혹이 제기될때마다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결과 대통령 지시에 따른 안종범, 김종, 정호성 등이 부패 범죄 혐의로 구속됐고,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면서 파면을 선고했다.
헌재의 판결이 알려지자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쪽에서는 일순간 함성의 소리가 퍼졌다. 11시부터 숨죽여 결과를 기다렸던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눈물을 훔치는 등 감격의 기분을 만끽했다.
반면 '대통령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은 격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주최 측은 "동요없이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분노한 반대집회 참가자들은 고함과 욕설 심지어는 폭력행위까지 불사하며 헌재의 결정을 맹비난했다.
◆ 탄핵찬성 측 환호…"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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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선고를 들은 퇴진행동 측 상황 [사진 = 강영국 기자] |
다만 결정문 낭독이 시작됐음에도 현장 음향사고로 소리가 나오질 않자 시민들은 급격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명운이 뒤바뀔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간절한 모습이었다. 방송은 약 3분 가량 먹통이었다가 이내 정상화됐지만 이후에도 화면이 끊기는 등 지속적으로 차질을 빚었다.
방송 시청은 다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집회에서는 간간이 짧은 박수만이 나왔을 뿐 참가자들은 대부분 숨을 죽인채 방송에 집중했다. 경찰 벽을 마주하고 있는 태극기 집회 쪽과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오전 11시 22분께 이 권한대행이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고 말하자 곳곳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순간이었다.
이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 소장의 발언이 나오자 집회 참가자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서로 감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으며 현장에서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는 가사를 담은 노래가 울려퍼졌다.
퇴진행동 측은 이제는 구속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최 측은 이날 오후 7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이어갈 방침이며 오후 9시부터는 종로 대로에서 자축 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집회에 참석한 김모(59·남)씨는 "한두가지 문제였다면 모르겠지만 박 대통령은 누가봐도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던 사람"이라면서 "올바른 판단을 내린 헌법재판소에 감사하고 이제는 세월호 진상규명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분노에 휩싸인 탄핵반대 측 "계엄령 선포해야" 즉각 반발
안국역 4, 5번 출구 인근에서 탄핵 기각을 외쳤던 수백명의 탄기국 집회 참가자들은 헌재의 판결이 나오자 믿을 수 없는 듯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이들은 오전 11시부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탄핵인용,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파면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이들의 외침은 분노의 함성으로 바뀌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전일부터 밤샘농성을 이어왔다는 박지영(59·여)씨는 "8명의 헌재 재판관으로 진행한 탄핵 결과는 납득할 수 없다"면서 "박정희에 이어 박근혜까지 대통령에게 어떻게 이럴수 있냐"고 울분을 토했다.
안국역 곳곳에서는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 '헌재의 재판을 다시해야 한다'는 일부 참가자의 외침이 퍼졌다.
극도의 반발감은 이내 폭력으로 이어졌다. 일부 참가자들은 길을 막고 있는 의경들이나 취재 중인 기자에게 다가가 몸싸움을 벌였다. 몇몇은 촛불 집회 측으로 넘어가 욕과 비난의 말들을 쏟아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진과 주장이 담긴 피켓을 밟고 지나가는 등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상황도 연출됐다.
사망자와 부상자 발생도 속출하고 있다. 탄핵 반대를 외치던 70대 남성이 버스에 오르려다 떨어져 머리를 다친 상태로 병원에 이송 중 숨진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국역 역사 인근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남성 1명도 심폐소생술 실시 중 사망한 것으로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경찰은 최상위 비상령을 내렸다. 헌재 판정에 따른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57개 중대 4600여 명을 안국역과 헌재 주변에 집중 투입하고 차벽을 세웠다. 헌재로 향하는 길목에는 3중 방어막을 설치해 혹시나 모를 테러상황에도 대비하고 있다. 실제 반대집회 회원 일부가 건물 외벽을 타고
탄핵에 반대하던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다음날인 11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제20차 태극기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디지털뉴스국 김경택 기자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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