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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 조건을 다는 소위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늘면서 효도계약을 둘러싼 세대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효도계약이란 재산을 증여하는 부모에 대해 자녀가 효도 의무를 부담하기로 합의하는 것을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재산을 둘러싼 이해다툼으로 비칠 수 있지만 이면은 훨씬 복잡하다. '효(孝)'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갈수록 뚜렷한 인식 차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모들은 '자녀의 정기적 방문' '가족행사 참여' 등 혈연적·정서적 의미에 집착하는 반면, 자녀세대의 경우 '용돈·비상시 목돈 등 부양료 지급' 등을 우선순위에 꼽아 현실적·물질적 지원 의미로 해석하면서 갈등이 더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2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효도계약과 불효자 방지법안에 대한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태도'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는 자녀가 자주 찾아오거나 안부 전화를 하는 등의 '정서적 지지'를 가장 원하지만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병간호나 경제적 지원을 최고의 '효'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효도계약 조건을 △신체·물리적 도움 △정서적 지지 △부모 간병 △경제적 부양 △규범적 의무 등 5가지 항목으로 압축한 뒤 각각에 대한 요구도를 4점 척도로 분석한 결과 부모 세대는 정서적 지지(3.14점)를, 자녀 세대는 부모 간병(3.29점)을 각각 '효도' 항목 1순위로 꼽았다.
특히 경제적 부양에 대해 자녀 세대는 3.16점을 부여하며 부모 간병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나 부모 세대는 가장 낮은 점수(2.56점)를 주면서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오히려 부모세대는 '규범적 의무' 항목에서 2.99점으로 자녀 세대(2.77점)보다 더 높은 요구를 보였다. 규범적 의무란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해 경제적 물리적 지원을 하거나 명절에 부모님 찾아뵙기, 조부모 제사 및 묘소 관리, 형제·친척 간 우애 있기 지내기 등과 같은 전통적 규범을 말한다.
유계숙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부모 세대는 핵가족 시대 하에 혈연의 의미를 붙잡기 위해 여전히 '가족주의'에 기초한 전통적 의미의 효와 부양에 대한 기대가 높은 반면 성인 자녀 세대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라는 기능적이고 조건적인 부양을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속·증여 분쟁 전문가인 방효석 변호사(법무법인 우일)는 "부모는 언젠가부터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고, 명절 때나 자식이 찾아 뵙는 게 현실"이라며 "50대 이상들은 자녀의 정기적 방문 가치를 1000만 원 이상으로 생각할 정도로 간절히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효에 대한 인식 차이로 관련 분쟁도 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을 해 준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부양료를 청구하는 가족 간 부양료 청구 소송은 총 107건 접수됐다. 2012년 86건에서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늘어가는 분쟁 가운데 국회에는 속칭 효도법(불효자방지법)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증여한 재산을 돌려 받을 수 있는 사유에 '학대'와 '부당한 대우' 등이 추가됐다. 또 증여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도 1년으로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는 부모에 대한 범죄행위 등에만 증여 재산을 돌려 받을 수 있으며 해제권 행사기간도 6개월에 그친다.
자녀세대들의 효를 바라보는 관점 변화에 대해 단순히 물질만능주의로 해석해서 안된다는 반론도 있다. 숨가쁜 직장생활과 고달픈 육아 등으로 부모가 원하는 '효'의 실천이 쉽지 않을 뿐더러 개념도 명확하지 않아 사실상의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식간에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
[양연호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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