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무용가' 최승희, 프랑스 공연 팸플릿 발견…그녀는 누구?
전설의 한국 무용가 최승희의 프랑스 공연 홍보 팸플릿이 78년만에 발견됐습니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이사장 차길진)가 전설의 한국 무용가 故최승희(1911~1969)의 1939년 1월 31일 프랑스 파리 '살 플레옐(Salle Pleyel)' 극장 공연 홍보 팸플릿을 78년 만에 발견했다고 7일 밝혔습니다.
팸플릿은 최승희 유럽투어를 기획한 국제예술기구와 주관사인 마르셀 드 발말레트가 제작한 것입니다.
최승희의 미국·유럽·남아메리카 순회공연 80주년을 1년 앞두고 한겨레아리랑연합회가 추진하고 있는 최승희 해외자료발굴 사업성과 가운데 하나입니다.
유럽 7개국 16개 도시에서 최승희 관련자료를 수집하다가 지난 6월9일 파리 국립오페라하우스 도서관에서 찾아냈습니다.
팸플릿에서는 최승희를 '극동의 유명한 무용가'라고 소개했습니다.
일본어 발음에 따라 최승희의 이름을 '사이 쇼키'로 표기했지만, 공연작들은 일본이 아닌 '한국(Coréennes) 무용 공연'이라고 명기했습니다.
최승희가 창작 한국춤 13편을 3부에 걸쳐 선보였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불자를 유혹하는 여성'(승무), '덴카 다이쇼군'(천하대장군), '매혹적인 멜로디'(옥적곡), '기생춤'(장고춤), '젊은 날의 꿈'(身老心不老), '보살춤', '젊은 엽색가'(한량춤), '로양의 프레스코'(낙랑의 벽화), '유랑예인', '꼬마신랑'(초립동), '옥중 코의 고통'(춘향애사), '칼춤', '서울의 무녀'(무당춤) 등입니다.
무용사학자 김영희씨는 "팸플릿의 설명대로라면 일부 작품에서 원작과 달라진 내용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유럽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변경했을 수도 있고, 해당 작품 초연 이후 최승희가 변형해 가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 변경된 작품 설명대로 현지에서 춤을 재구성 내지 변형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습니다.
최승희는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서구식 현대적 기법의 춤을 창작·공연한 최초의 인물로 8·15해방 이전의 한국무용계를 주도했습니다.
한국 신무용의 개척자였던 그녀의 작품세계에는 민족주의적·국제주의적 성향이 섞여 있다고 평가됩니다.
그녀는 장기공연과 지속된 순회공연을 통해 대중의 인기를 모음으로써, 당시 춤 작품의 유통구조에 신기원을 열었습니다.
이시이 바쿠의 무용을 보고 감명받아 무용에 입문했습니다.
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차리고 1930년 2월 경성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발표회를 가졌는데 이 공연은 한국인 최초의 독자적인 춤 공연이었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1942년 16일간 24회의 연속 독무 공연을 했는데 당시로서는 세계 무용계 최초의 장기 독무로 평가됩니다.
해방 후 일본군 위문 공연이 친일경력으로 평가되어 활동이 여의치 않은 데다 남편 안막이 먼저 월북하자 그녀도 1947년 4월 월북했습니다.
월북 후 북한 무용계를 선도하여 조선춤을 체계화하고 무용극 창작에 힘썼습니다.
1967년 그녀도 숙청당
2003년 2월 북한은 최승희가 애국열사릉으로 이장되었다고 발표했는데, 이때 최승희의 묘비에는 1969년 8월 8일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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