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기업과 개인을 살릴 각국의 '묘수'를 공유하기 위해 전 세계 도산 법률가들이 서울에 모인다. 서울회생법원(원장 이경춘)은 14~15일 이틀간 '개원 기념 국제컨퍼런스'를 열고 효율적인 기업·개인 회생 방안을 논의한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컨퍼런스에는 특히 기업회생·국제도산 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이라 평가받는 미국 뉴욕남부 연방파산법원의 로버트 드레인(Robert Drain) 판사와 국제도산을 연구하는 UN 산하기관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제니 클리프트(Jenny Clift) 수석법률담당관이 주요 발표·토론자로 나선다. 매일경제는 이들과 사전 서면 인터뷰를 갖고 기업회생에 성공하기 위한 조건과 국제사회의 화두를 물었다.
이번 컨퍼런스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정준영 수석부장판사(50·사법연수원 20기)는 "체계적으로 제도를 비교해 하반기에 집중할 '중소기업 회생 절차 정비' 등에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고 밝혔다. 국내 도산법 대가로 잘 알려진 임치용 김앤장 변호사(57·14기)도 "이미 우리나라 제도는 아시아권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각국의 제도를 되돌아보고 세계적 기준에 올라서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서면 인터뷰 일문일답.
◆ 로버트 드레인 뉴욕남부 파산법원 판사
- 기업회생 성공하려면 변호사 전문성·경영진 책임감 중요
↑ 로버트 드레인 미국 뉴욕남부 연방파산법원 판사 <사진=서울회생법원> |
▷ 우선 수년간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또 회생 사건에서 주요 쟁점을 잘 관리·협의해준 숙련된 변호사·금융권의 조언자·구조조정 전문가들의 덕을 봤습니다. 이상적인 기업회생 사건에는 치열한 이론은 없게 마련인데, 핵심 당사자들이 합의에 이르기까지 쟁점을 충분히 분석하고 협상해왔기 때문입니다.
― 기업회생은 되도록 빨리 절차를 시작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기업 경영진은 종종 '실패자'라는 낙인 때문에 기업회생 신청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 그런 두려움은 한편으로 이해는 가지만 궁극적으로는 '근시안적'입니다. 재정난을 겪고 있다면 경영진은 신속하게 '숙련된 조언가'의 도움을 받아서 재정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구조조정이 필요한지, 그 구조조정은 법원의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너무 시간을 끈다면 이미 시간과 현금을 다 잃고 가능한 선택지도 사라져버린 뒤겠죠.
― 미국의 경우는?
▷ 미국에서도 많은 채무 기업들이 이미 현금이 다 고갈된데다 채권단에 휘둘리는 상태에서 회생 신청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유일한 방법은 회사를 매각해버리는 것뿐입니다. 반면에 아직 충분한 현금과 재정을 가진 상태에서 잘 계획된 회생신청을 하는 채무자들은 기업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아메리칸항공과 델타항공이 그런 '적기에' '잘 계획된' 신청을 통해 회생한 좋은 사례입니다.
― 부실 기업의 회생 신청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은?
▷ 미국의 이사회나 경영진 또는 지배주주는 회사가 파산하거나 도산 위기에 처했을 때 회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고려해야 한다는 '신의성실의 의무'를 집니다. 만약 회생신청이 최선의 방법인데도 신속하게 법원에 오지 않았다면 이는 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이사회 등은 주주뿐 아니라 채권단에게도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만약 경영진이 경영권 유지 같은 사적인 이익 때문에 회생신청을 제때에 하지 않았다면 법적 책임은 더 커집니다. 그래서 능력 있고 경험 많은 전문가가 경영진에게 절차에 관해 일찍 조언해주는 게 특히 중요합니다.
― 한국은 P플랜 회생절차*를 도입했지만 아직 채무자·채권자가 부담을 느끼거나 제도가 익숙하지 않아 신청 사례가 없는데.
▷ P플랜의 특성상 '사전회생계획안'을 회생 신청 전부터 작성해야 한다는 점 등은 상당한 업무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는 (회생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좋은 투자일 겁니다. 미국에서도 채권단이 회생 절차가 길어지는 것의 위험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P플랜 협의가 잘 이뤄집니다.
―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 최근 보드카 등의 주류 배급사 러스트(Roust Corp.) 사건은 P플랜을 통해 6일만에 절차를 끝냈습니다. 이 역할은 사실 변호사·실무가에게 달려있습니다. 채권자들의 채권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협의를 끌어내지 못하면 인가는 최소 몇 주일이 더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 P플랜이란 프리패키지드 플랜(Pre-packaged plan)의 약자. 통상 회생절차가 개시된 후 계획안을 마련하는 것과 달리, 채무자가 채권단과 협의를 거쳐 미리 회생계획안을 마련한 뒤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제도다. 통상 30~80일 안에 절차를 마칠 수 있다. 법원의 기업회생제도와 금융권의 워크아웃 장점을 합쳐 신속하게 기업 정상화를 돕는다.
◆ 제니 클리프트 UNCITRAL 수석법률담당관
- 한국의 '중소기업 회생절차' 인상적
- 최근 국제사회 화두는 '다국적 기업의 국제 도산'
↑ 제니 클리프트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수석법률담당관 <사진=서울회생법원> |
▷ 한국이 소상공인·중소기업을 위해 '간이회생'(채무액이 30억원 이하일 경우 절차 간소화, 2015년 도입) 제도를 도입한 점은 중소기업 도산 관련 글로벌 기준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됐습니다. 또 도산전문법원의 설립으로 법관들의 전문성이 높아지면 향후 까다로운 사건을 맡을 때도 도움이 될 겁니다.
― 중소기업 회생은 국제 도산 회의에서도 다뤄지고 있나?.
▷ 소상공인(MSME·Micro, Small & Medium Enterprises)의 도산에 관한 작업은 2018년부터 본격 착수하게 됩니다. 지난 5월 세션에서 한국과 일본 등의 사례를 듣기도 했죠. 한국처럼 중소기업에 대한 체계를 정비해둔 사례가 이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봅니다.
― 기업회생은 되도록 빨리 절차를 시작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기업 경영진은 종종 '실패자'라는 낙인 때문에 기업회생 신청을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 최근 UNCITRAL에서도 도산이 가까워지는 시기 기업 집단 이사진의 의무와 관련한 입법 지침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이밖에 최근 연구 분야는?
▷ 여러 계열사와 해외 법인을 둔 대기업 집단의 국제도산을 촉진시키는 겁니다. 여러 나라에 진출해 있거나 수많은 계열사가 연관돼 있어서 매우 복잡할 수 있는데, 국경을 넘어 각국 법원의 협조와 협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 올해 개원한
▷ 향후에도 국제컨퍼런스가 개최된다면 한국의 판사와 변호사·전문가들에게 다양한 국가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겁니다. 또 향후 국제도산 같은 사안이 불거졌을 때에 대비해 컨퍼런스 참석자들과 네트워크를 갖출 수 있을 겁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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