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뇌물공여 등)로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이 17일 구속됐다.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병호 전 원장은 구속을 면했다. 상납 지시 혐의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이들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이날 새벽 남재준·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범행을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중요 부분에 관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 이유를 밝혔다.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해서는 "주거와 가족, 수사 진척 정도 및 증거관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게 도망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이병호 전 원장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와 달리 영장심사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상납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깜짝 자백'은 법원의 구속 여부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나머지 전직 원장들과 같이 "청와대 측 요구로 월 1억원대의 특활비를 상납했다"고 인정했을 뿐, 박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남 전 원장은 상납을 시작했고 현대기아차 등을 압박해 관제시위 단체에 금전적 이익 26억여원을 몰아준 혐의가 있는 점, 이병기 전 원장은 월 5000만원이던 특활비 상납액을 월 1억원 수준으로 증액한 점 등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병기 전 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62·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1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건넸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증거인멸의 우려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법원의 구체적인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하고 이병호 전 원장을 추가 조사한 뒤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검찰은 이병호 전 원장의 재임 기간이 가장 길어 상납액이 25억∼26억원으로 가장 많고, '진박 감정용' 청와대 불법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제공한 정치관여 혐의까지 받는다는 점에서 구속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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