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전국 모든 소방서에 적용된 이른바 '소방관 일과표'를 두고 일선 소방관들이 쏟아낸 불만입니다. 여기엔 하루 24시간 동안 소방관이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지요.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위해 부모가 짜주는 방학 하루 일과표를 연상시킵니다. 이렇게 일과표를 만들어 운영하는 공무원은 국내에서 소방관뿐입니다. 더구나 오는 6월부터는 이 일과표를 어긴 소방관은 처벌한다고 하죠.
왜 이런 게 만들어졌냐고요?
제천·밀양 화재 같은 대형 참사를 겪으면서 소방관의 기본 역량인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훈련을 제대로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이 일과표는 지키고 싶어도 실제론 거의 지킬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시간으로 돼 있는 오전 9시에 갑자기 화재 신고가 들어오면 어쩌죠? 교육시간에 출동을 해서 불을 끄느라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못 먹고, 그래서 다음 일과 시간에 밥을 먹게 되면 또 그다음 업무가 밀리고, 결국 하루 종일 제대로 지킨 게 없게 되겠죠.
인력이라도 충분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난해 기준 소방공무원 수는 4만4,700여 명. 소방기본법상 현장 활동 적정 인원인 6만 명보다 무려 20%나 부족합니다. 올해 5,200여 명을 계획대로 신규 채용한다고 해도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여기에 말벌 퇴치 등 각종 민원에 동원되고, 소방용수 조사 등 행정 잡무도 해야 하고…. 다행히 소방당국이 소방관들의 민원성 현장출동을 줄이는 세부기준 마련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고는 시간을 정해놓고 발생하질 않지요.
그렇잖아도 과로사와 업무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인데, 일과표는 현장을 외면한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일 뿐입니다.
문제의 답은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