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일본, 고베) 김원익 기자] 흔히 ‘고시엔’으로 불리는 고시엔 야구장은 일본 야구를 상징하는 신화다. 동시에 일본야구의 과거, 현재를 잇는 접점이자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다. 89년의 역사 동안 신화로 숨쉬고 있는 고시엔은 아마야구의 성지(聖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여전히 일본야구의 중심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한국 야구의 역사와 성장을 상징하는 장소인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돼 사라진 우리네 현실과는 사뭇 다르게 여전히 팬들 가까이에 있다. 100년 가까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시엔은 여전히 경기장을 찾는 이들의 추억을 되살려내면서 또 다른 추억을 선사하고 있는 ‘꿈의 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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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고시엔 대회’는 아마추어들이 치르는 경기 치고는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경기는 연일 만원사례를 이루고 전국적으로 중계되는 TV 시청률도 폭발적이다. 미디어도 새로운 원석을 찾는데 많은 관심을 쏟는다. 고시엔은 야구를 생활처럼 즐기는 일본인들에게도 특별한 축제다.
고시엔 대회로 흔히 알려진 대회는 두 차례 열린다. 봄에 열리는 선발 고교야구대회와 여름에 열리는 전국고등학교 야구선수권 대회는 구장의 이름을 따라 ‘봄 고시엔 대회’와 ‘여름 고시엔 대회’로 불린다.
일본프로야구협회에 등록된 전국 4235개의 고등학교의 야구부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대회’다. 예선부터 경쟁이 워낙 치열한 탓에 경기가 끝나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승리한 선수들은 고향에서부터 자신들을 응원하러 온 관중석의 응원단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패배한 선수들은 고시엔구장의 흙을 저마다 담아 집으로 돌아간다. 본선에 올라 이 흙을 한 번 밟아보는 것이 꿈인 야구소년들에게 ‘고시엔’은 하나의 목표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대회의 열기는 프로야구 못지않게 뜨겁다. 관중석이 꽉꽉 들어차고 해마다 유명스타들이 탄생한다. 이들은 다시 성장해 프로야구의 주역으로 거듭난다. 또한 고시엔 구장을 응원하러 각 지역의 팬들이 모여드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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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일본 아마야구대회를 위해 탄생한 고시엔구장과 더 앞서 탄생한 고시엔 대회가 일본 야구 정도(正道)의 롤모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뭇 상징적이다. 고시엔의 최대 목표는 좋은 성적을 내서 좋은 대학이나 프로에 진출하기 위한 무한경쟁이 아니다. 어떤 선수들은 고시엔 우승을, 또 어떤 선수들은 고시엔 본선 대회 출전을 목표로 하겠지만 이들이 내거는 것은 모두 순수한 스포츠의 열정이다.
고시엔이 아마야구의 순수한 열정을 표상하는 생생한 증거로 작용하는데는 대회 자체의 상징성이 큰 의미를 차지한다. 동시에 고교야구 선수들의 다양한 사회 진입의 길이 열려있는 것이 결정적이다.
이미 일본의 유소년 야구는 빠르게 학원스포츠화하고 있다. 주말리그제를 도입한 한국처럼 운동 보다는 선수들의 학업 비중을 늘리도록 바뀐지 오래다. 바늘구멍 같이 좁은 프로의 문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중고등학교 시절 야구를 접했던 이들이 사회로 다시 편입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시엔 대회 수준과 아마추어 야구 수준의 하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시엔대회는 가장 뜨겁고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대회로 매년 야구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소년들이 흘리는 땀과 열정이 우승만큼 값진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의 풍토와, 순수하게 야구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응원이 이들을 지지하고 있다. 이처럼 고시엔 대회가 아마야구를 표상하는 대회로 사랑을 받는 이상 고시엔의 신화는 앞으로도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름 고시엔 대회가 시작되면 한신 타이거즈는 한 달여간 지옥의 원정길을 떠난다. 그럼에도 한신의 팬들과 구단은 수십년동안 이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유소년 야구의 성장이 일본 야구의 근간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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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엔 구장에는 아주 특별한 장소가 있다. 바로 ‘고시엔 역사관’이다. 이곳은 바로 고시엔 야구대회의 1915년 1회대회부터 2012년 대회까지 무려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의 역사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초기 대회 때 사용했던 낡은 글러브나 배트는 당시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역대 대회 명승부의 사진들과 기록들은 당시의 치열했던 열정을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환희와 감동도 마찬가지다. 단지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진을 걸어놓는데 그치지 않는다. 대회에 함께 했던 구성원 모두를 잊지 않는다. 압권의 장면은 역대 고시엔대회별 본선 대진표를 모두 그려놓은 벽면이다. 벌써 기록이 소실되고도 남았을 10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1회전에서 탈락한 학교가 어떻게 싸웠는가조차도 그들은 빽빽하게 기록으로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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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한신 구단의 역사의 모든 순간들도 함께 남아있다. 한신의 탄생과 번영을 이끈 레전드들을 기념하고 추억하는 공간도 있다.
이런 고시엔 구장도 재건축 혹은 이전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돔구장의 필요성과 신축구장에 대한 당위성이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한신의 팬들과 고시엔 대회를 아끼는 팬들은 고시엔을 계속 리모델링하고 바꾸는 것으로 스스로의 역사를 지켜냈다.
누구에게는 향수로, 누구에게는 다시 꿈으로, 누구에게는 열정으로 이어지는 고시엔은 진정한 의미의 축제로 기능하고 있다. 일본 야구(野球)의 성장과 번영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는 고시엔은 일본야구의 과거이자 현재인 동시에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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