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프로농구 코트가 선수간 욕설 파문으로 얼룩졌다. 김승현(35, 삼성)과 김동욱(32, 오리온스) 두 간판스타의 도 넘은 설전이었다. 한국 정서상 선후배 문화가 자리잡은 프로농구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왜 둘은 참지 못하고 폭발했을까. 사실 여부와 잘잘못을 떠나 코트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볼썽사나운 장면이었다.
서울 삼성 베테랑 가드 김승현이 고양 오리온스 김동욱의 거친 파울에 분노한 뒤 언쟁을 벌여 욕설 파문에 휩싸였다. 사진=MK스포츠 DB |
심판 콜은 불리지 않았고 그대로 경기가 진행됐다.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김승현이 김동욱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건넸다. 김동욱도 맞받아쳤다. 그 사이 욕설이 오간 것으로 보인다. 김승현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승현은 오리온스 벤치로 가서 추일승 감독과 김병철 코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불만의 표출이었다. 삼성은 김승현을 자제시키기 위해 작전타임을 불렀다. 경기 종료 후 둘의 만남은 없었다.
김승현은 경기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구단 프런트에서 발언을 자제시켰지만, 막을 수 없었다. 극도로 화가 난 상황이었다. 김승현은 “난 욕한 적이 없고 최대한 좋게 말했다. 그런데 다짜고짜 반말을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며 김동욱의 태도를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김승현의 폭탄 발언 직후 김동욱은 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김동욱도 할 말은 있었다. 김승현 발언 이후 김동욱은 거친 파울성 플레이와 욕설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먼저 욕설을 들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동욱이 먼저 김승현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했고 김승현이 사과를 받으면서 험악한 상황은 일단락됐다.
김승현이 분노한 이유는 두 가지다. 동업자 정신과 선후배 사이의 예의다. 김승현은 부상에서 복귀한지 2경기째였다. 그런데 고의성이 있는 거친 파울을 당했다. 게다가 공과 상관없는 위치였다. 충분히 화가 날만 했다. 따끔하게 충고했다. 그 사이 육두문자가 들어갔는지는 둘만 알고 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되레 욕설이었다. 김승현은 “세 살 어린 후배한테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라며 한탄했다.
코트 위에서는 선후배, 형동생이 없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예의’라는 것은 존재한다. 첫째가 동업자 정신이다. 상대의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자세다. 또 한국 정서상 경기 외적인 선후배 문화는 무시할 수 없는 예의다. 선후배 누가 됐든 욕설이 오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언행이다. 이번 욕설 파문의 발단은 김동욱이었다. 먼저 동업자 정신을 망각했다. 이후 행동은 둘 다 잘못했다. 코트 위에서는 자제했어야 옳다.
경기 종료 후 김승현의 행동도 박수받기 힘든 처사였다. 김승현은 스스로 최고참급 선수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후배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했다.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일방적으로 후배를 모욕했다. 화가 난 상황이었더라도 오해의 여지가 있는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둘이서 풀어야 할 문제였다. 김동욱이 억울함을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농구는 몸을 부딪히는 스포츠다. 종종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상황이 연출된다. 때론 이런 몸싸움이 농구의 재미를 더할 수 있다. 또 경기 중 언쟁이 오가기도 한다. 일명 ‘트레시 토킹’이라고 하기도 한다. 암묵적인 허용 범위가 있다. 그러나 이번 욕설
김승현은 “경기를 이기고도 기분이 언짢았다”고 했고, 김동욱은 경기도 지고 매너도 지키지 못했다. 김승현은 삼성의 주장이고, 김동욱은 최근까지 오리온스의 주장을 맡았다. 코트 안팎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두 베테랑 선수에게 남은 것은 상처 뿐이었다. 둘을 지켜본 농구 팬들의 기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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