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지난 8일 2014 소치동계올림픽 D-30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이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오찬을 함께 했다. 올림픽 선전을 기원하고 선수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건넨 말 한 마디에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을 품은 종목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오로지 열정 하나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썰매 종목 선수들이었다. 특히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수들은 귀가 번쩍했다.
강신성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회장은 박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간곡히 부탁했다. 국내에 제대로 된 훈련장이 없어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해외를 떠돌 수밖에 없는 척박한 현실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강 회장은 “봅슬레이 국내 경기장은 2017년 완공 계획이다. 평창올림픽 직전에 완공되면 너무 늦다. 2016년에만 완공이 되더라도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여건의 차이는 크다. 그때 썰매를 탈 수만 있다면 선수들의 기량은 훨씬 좋아질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께 부탁을 드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강 회장에게 “기왕에 할 거면 빨리 당겨서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라고 곧바로 화답했다. 강 회장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강 회장은 “강원도와 대한체육회에 조기 완공 추진을 계속 부탁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 지난해 프로야구 깜짝 시구자로 나서기도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의 선전을 위해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을 약속했다. 사진=MK스포츠 DB |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소치올림픽 전종목 출전권을 따냈다. 턱없이 부족한 정부 지원과 예산, 장비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따낸 값진 성과였다. 한국판 ‘쿨러링’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적에 가까운 쾌거다.
봅슬레이 대표팀이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의 엄청난 노력의 결실이었지만, 지난해 새로 구입한 장비의 효과도 분명 있었다. 봅슬레이 썰매는 고가다. 2인승이 한 대에 1억2000만원, 4인승은 1억6000만원에 이른다. 또 눈의 컨디션에 따라 바꿔야 하는 썰매날 등 부속품의 비용도 만만찮다. 강 회장은 "지난해 새 썰매를 세 대 구입하면서 선수들의 기량이 확실히 늘었다"고 기뻐했다. 종전 썰매 한 대로 버티던 대표팀이 어렵게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구입한 썰매였다.
봅슬레이는 장비를 이동하거나 트랙을 한 번 타는 데 드는 비용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해외 전지훈련에서 트랙을 한 번 타는 데 드는 비용은 4~5만원, 장비 이동비도 7500만원 정도가 든다. 성윤택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사무국장은 “국가에서 장비 이동비 지원은 없다. 썰매 왕복도 안해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지금도 후원 기업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토로했다. 봅슬레이 대표팀의 총 예산은 20억원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14억원 정도가 고스란히 해외 전지훈련을 하는 데 쓰여진다. 여기에 대우 인터네셔널로부터 3억원을 지원받고 연맹 회장의 사제까지 더해 충당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 사무국장은 “그래도 평창올림픽이 유치되면서 지원 횟수가 많이 늘었다. 하지만 비인기 종목 자체에 대한 어려운 점은 여전하고 유독 썰매 종목이 힘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에서 선수단과 지도자가 느끼는 한계는 더 크다. 이용 봅슬레이 대표팀 감독은 “장비는 아직 선진국 대열에 들지 못하고 있다. A‧B‧C등급이 있다면 우리는 B등급 수준이다. 평창에 경기장이 생기면 국내의 안정적인 환경에서 훈련을 할 수 있다. 지금 스타트에서는 세계 4위 정도인데 세계 1위도 충분히 가능하다. 스타트가 되면 드라이빙 기술 보완에 중점적인 훈련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 전지훈련을 마치고 지난 22일 귀국한 봅슬레이 대표팀은 국내에 트랙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컨디션을 조절하며 육상 훈련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박 대통령의 경기장 조기 완공에 대한 말 한 마디는 봅슬레이 대표팀에게는 든든한 약속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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