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새크라멘토) 김재호 특파원]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LA다저스 산하 트리플A)와 새크라멘토 리버 캣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의 퍼시픽코스트리그 경기가 열린 30일(한국시간) 레일리 필드. 새크라멘토 8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한 이학주(25)의 방망이가 무섭게 돌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뻗었지만, 좌익수 글러브에 걸렸다.
"한동안 이런 타구가 안 나왔다." 경기 후 만난 이학주의 얼굴은 어두웠다. "지금 한 15~20경기 정도 주춤했다. 체력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슬럼프도 긴 편이 아니었다"며 최근 상황에 대해 말했다.
4월 한 달 21경기에서 타율 0.315 출루율 0.383 장타율 0.479로 달아올랐던 이학주의 방망이는 5월 23경기에서 타율 0.215 출루율 0.311 장타율 0.291로 식었다.
↑ 이학주는 이번 시즌을 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A에서 보내고 있다. 사진(美 새크라멘토)= 김재호 특파원 |
답이 없는 기다림
그를 답답하게 만든 것은 답이 없는 기다림 때문이다. 이학주는 지난 겨울 복수의 팀을 놓고 고민하다 자이언츠를 택했다. 당시 자이언츠는 바비 에반스 단장이 이학주에게 직접 관심을 보였다. 스프링캠프 기간에도 유격수로 적지 않은 이닝을 소화하며 가능성을 점검했다.
시즌 시작 후, 기회가 찾아왔다. 시즌 초반 유틸리티 내야수 에히레 아드레안자가 왼발 골절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자이언츠 40인 명단에는 이를 채울 만한 내야 자원이 없었고, 당시 이학주는 새크라멘토에서 타율 0.391 출루율 0.462 장타율 0.739를 기록하며 타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부름을 받지 못했다. 대신 외야수 맥 윌리엄슨, 3루수 코너 길라스피 등 팀 동료들이 부름을 받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지난 2년간 무릎 부상의 여파로 2할 초반대 타율에 허덕였던 그는 이전 수준의 공격력을 회복했다.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빅리그에 준비됐음을 알렸다. 그럼에도 응답이 없었다. ’여기서 더 뭘 보여줘야 하지’하는 좌절감이 그를 찾아왔다.
"내가 생각한 대로 야구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에게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기회를 보고 미국에 온 거 아닌가. 그러나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구단에서는 ’준비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머리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륙도시인 새크라멘토에는 벌써 더위가 찾아왔지만, 그 더위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의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야구가 잘 될 때는 세월이 빨리 가지만, 안 될 때는 반대다. 사람을 미치게 한다. 위에 있는 선배들, 밑에 있는 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미음은 서서히 지쳐갔다.
자신이 사랑하고, 업으로 삼는 일이 자신을 슬프게 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 그에게 지난 두 달은 잔인한 시간이었다.
↑ 무릎 부상 이후 예전같지 않은 모습이었던 그는 이번 시즌 완전히 부활에 성공했다. 사진(美 새크라멘토)= 김재호 특파원 |
실망하지 않고 기회를 찾겠다
메이저리그는 잔인한 곳이다. 그처럼 기회를 갈망하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업계의 생리를 모를 리 없는 그도 "구단에 악감정은 없다"며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건 선수가 통제해야 하는 일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아쉬움을 삼켰다.
이학주에게 지금은 중요한 시기다. 그의 계약에는 현지시간 기준으로 6월 1일 옵트 아웃을 선택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자이언츠 구단이 그를 25인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그는 새로운 팀을 찾아갈 수 있다.
지친 그에게 마지막 활력을 불어넣어 줄 카드다. "지금은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선택의 시간을 앞두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원하는 팀이 있으면 갈 것이다. 지금까지는 앞만 보고 갔는데, 기회가 없었다.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가는 게 내 목표다,"
기회가 절실한 그는 "’다른 길’이 미국 밖에 있을 수도 있다"며 기회가 있는 그 곳이 꼭 꿈의 무대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만큼 그는 간절했다.
↑ 기다림에 지쳤지만, 이제 다시 새롭게 출발할 시간이다. 사진(美 새크라멘토)= 김재호 특파원 |
한국프로야구(KBO)가 대표팀을 구성하는 현실상,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는 어필하는데 한계가 있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최
그는 "지금은 다시 나사를 조여야 할 때"라며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고 새로운 마음으로 뛰겠다고 다짐했다. 현실은 실망스럽지만,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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