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기록의 여운은 이제 끝난 것 아닙니까?”
8월의 첫째날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롯데 자이언츠 손승락(35)이 환하게 웃었다. 손승락은 지난달 30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이번스와의 경기에 팀이 3-2로 역전한 9회말 마운드에 올라 세 타자를 삼진 2개를 곁들이며 잡아, 팀 승리를 지켰다. 자신의 시즌 20세이브째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손승락은 첫 타자 박정권을 4구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후속 노수광도 4구만에 중견수 뜬공 처리했다. 이어진 김강민도 역시 4구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렸다. 손승락의 완벽한 세이브였다.
이 세이브로 손승락은 KBO리그 역사에 남을 중요한 기록을 세웠다. KBO리그 역대 두 번째로 6년 연속 20세이브 달성에 성공한 것이다. 손승락 이전에는 7년 연속 20세이브로 이 부분 최다를 기록한 한화 구대성이 있다.
↑ 환한 미소를 짓는 손승락. 올 시즌 손승락은 유독 웃는 날이 많다. 사진=MK스포츠 DB |
◆ 와신상담…그리고 부활, 비결은 “10년만에 참가한 마무리 캠프”
사실 올 시즌 손승락은 부활모드다. 지난해는 다소 페이스가 떨어졌다. FA(자유계약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첫 해라 스스로에 대한 실망도 컸다. 물론 외부의 시선도 따가웠다. 마무리 투수로서는 높은 평균자책점 4.26에 7승2패 20세이브가 첫 해 기록이었다. 객관적으로도 FA로 영입한 선수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 없는 성적이다. 시즌 후 손승락은 이를 악물었다.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손승락의 전성기는 끝났다”라는 얘기는 듣기 싫었다. 현대·넥센 시절을 통틀어 10년 만에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 참가했다. 손승락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시간이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마무리 캠프에서 일기를 쓰면서 하루하루를 되돌아봤다. 좀 더 성숙해졌던 것 같다. 예전 경찰청 시절 2년 동안 매일 일기를 쓰면서 한 단계 발전한 경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손승락은 “요새도 매일은 아니지만, 경기 후 메모를 한다. 내가 느꼈던 좋은 느낌을 글로 적어서 기억하고 싶었다.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야구계에서 가정적인 선수로 유명한 손승락에게 가족들의 성원도 큰 힘이 됐다. 이제 부쩍 자란 큰 딸 채링은 아빠의 등장곡인 그룹 퀸(Queen)의 위 윌 락유(We will rock you)를 흥얼거릴 정도다. 손승락은 “큰 애가 집에서 부르니, 작은 애도 같이 부른다. 뭐랄까 참 뿌듯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렇다”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야구장에도 자주 오는데, 요즘은 더워서 잘 안오려고 한다”며 웃었다.
↑ 지난해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딸 체링이와 함께 참가한 손승락. 손승락은 가정적인 야구선수로 유명하다. 사진=MK스포츠 DB |
손승락이 본격적으로 마무리 투수로 나선 시기는 경찰청에서 전역한 뒤인 2010시즌이다. 사실 손승락은 프로에 데뷔하던 2005시즌만 하더라도 선발투수감으로 각광을 받았던 기대주였다. 유일하게 커리어에서 100이닝 이상(134⅓이닝)을 소화한 시즌이었지만, 5승10패에 평균자책점은 5.43이었다. 2006시즌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6승5패 2홀드 평균자책점 4.17의 성적을 거뒀다. 이후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뒤 2007시즌 이후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경찰청 전역 후 2010시즌을 앞둔 스프링캠프에서 마무리로 낙점 받은 뒤 지금까지 마무리 투수 생활을 하고 있다. 손승락은 “처음 마무리를 한 뒤 1~2년 뒤에 다시 선발로 돌아가고 싶었다. 10승 투수도 못 해봤는데…”라며 “마무리 투수를 하면서 느낀 점은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멘탈이다. 그건 생각의 차이인 듯싶다. 가장 중요한 건 오늘만 생각하면 된다는 점이다. 오늘만 생각하면 내일도 안 궁금하고, 어제 일도 잊어버리게 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마인드 컨트롤을 없다. 경기에 집중하면 된다. 이는 마무리 투수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고, 그냥 투수건, 타자건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블론세이브나 끝내기 패배 또한 마무리 투수에게는 운명과도 같다는 게 손승락의 생각이었다. 사실 6년 연속 20세이브를 거두기 이틀 전인 28일 인천 SK전에서 손승락은 7-7로 맞선 9회말 마운드에 올라 2사를 깔끔히 잡은 뒤, 한동민에 끝내기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150km 묵직한 속구가 낮게 깔려들어갔지만, 한동민이 걷어 올렸다. 손승락은 “그 때 빨리 잊는 게 중요하다”며 멋쩍게 웃었다.
↑ 올해 20번째 포수 강민호와 경기를 마치고 환하게 웃었다. 롯데로서도 남은 시즌 중에도 저런 장면이 많으면 많아야 한다. 사진=MK스포츠 DB |
올 시즌 20개의 세이브를 추가하며, 손승락은 통산 217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세이브 부문 역대 순위에서도 올해 손승락은 구대성(214개)을 제치고 역대 4위로 올라섰다. 3위인 김용수(전 LG)의 254세이브, 2위인 임창용(KIA)의 254세이브, 그리고 부동의 1위인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의 277세이브까지도 정조준하고 있다. 올 시즌 4월까지 6세이브를 거두고 5월과 6월 각각 3세이브씩 추가했던 손승락은 7월 8세이브로 점점 페이스가 나아지는 모습이다. 현재 세이브 23개로 1위인 NC 임창민과 3개 차로 좁혔다. 마무리 첫 해인 2010시즌과 46세이브를 기록했던 2013시즌, 2014시즌 세이브왕에 올랐던 손승락으로서는 4번째 타이틀에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통산 세이브 순위도 충분히 더 끌어올릴 수 있다.
그는 마무리 투수로서 자부심이 강했다. 손승락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힘이나 체력적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대기록 행진을 더 이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내 스스로 운동하기 싫을 때까지는 기록은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야구장에 나오는 게 너무 즐겁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손승락은 “감히 자신 있게 선수생활을 더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며 “지금은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 집중하고 싶다”고 굳게 말했다. 마무리 투수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손승락다운 대답이었다.
1982년 3월 4일생
187cm, 99kg
내당초-경상중-대구고-영남대-현대-넥센-롯데
2001년 현대 2차 3라운드 25순위(입단 2005년)
2003년 대통령기 대학 우수투수상
2010, 2013, 2014년 KBO리그 세이브왕
2013년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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