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인도가 체결한 원자력협정이 20일 발효됐다.
이로써 일본은 인도에 원자력발전소 수출과 관련 기술 이전이 가능해졌다.
만성적으로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구 급증에 고심하던 인도도 한숨을 돌린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이 '탈(脫)원전'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면서 급진적인 원전 중단 정책이 추진되는 사이 국내 사업 위축에 위기를 맞은 일본은 적극적으로 원전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日 원전사업 해외서 본궤도
일본이 인도와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것은 위기에 빠진 일본 원전사업을 되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풀이된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 국내 원전 사업이 전면 중단되면서 원전 관련 기업들은 신사업 구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아베 총리가 2015년 8월 '원전제로' 정책 시행 이후 약 23개월 만에 다시 원전 가동을 시작하면서 원전 기술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됐으나 추가적인 원전 건설 계획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국내에서 해결책을 찾아줄 수 없게 되자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외무성 관계자는 "(협정 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전업체를 지원하려는 경제산업성과 총리 관저의 뜻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원전은 1기 건설에 5000억엔(약 5조원)이 드는 대형 인프라인 만큼 기업들에게 신시장 개척의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현재 인도 이외에도 브라질, 남아공, 사우디아라비아, 멕시코 등 4개국과 원전 수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인도 측에 원전 안전 기술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쿠단쿨람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원전 시설이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인도 내부에서도 원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전국 각지에서 원전 반대 시위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동일본대지진 당시 쓰나미로 인한 침수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던 만큼 사고를 대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인도 측에 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中 견제 위한 포석도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용도로 인도와 협력을 강화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이 일본과 국경을 접하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일본은 인도와 협력해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새로운 외교 전략으로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장기적인 원자력 이용 방침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각부 원자력위원회는 원자력정책의 장기적 방향과 관련해 원전의 안정적인 이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기본 방침으로 정했다. 위원회는 '원자력 이용에 관한 기본적 사고방식'에서 원자력이 생산비용이 적고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는 이유를 들며 이같이 규정했다. 위원회가 원자력의 안정적인 이용을 요구한 것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처음이다. 위원회는 동일본대지진 당시 원전 사고로 인해 원자력이 국민적 신뢰를 잃었으나 국가와 전력회사가 신뢰 회복을 위해 모든 대응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위원회의 의견은 정부가 에너지 기본정책을 개정하는 데 반영되는 만큼 일본 국내 원전 사업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정상회담서 교섭시작
이와관련 일본과 인도는 지난 2010년 6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원자력협정 체결교섭을 시작했다.
일본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미가입국과 원자력협정을 맺은 것은 1972년(프랑스), 1986년(중국) 이후 처음이다. 프랑스와 중국은 일본과의 원자력협정 체결 이후 NPT에 가입했다. 일본은 인도가 지금까지 2번에 걸쳐 실시하면서 NPT 가입을 거부하고 있으나 2008년부터 '핵실험 모라토리엄(자발적 동결)'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체결 교섭을 진행했다. 당시 인도는 미국, 프랑스와 원자력협정을 맺은 상태였던 만큼 일본은 이를 참고로 협정 체결에 나섰다.
이후 2015년 1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기본 합의를 거친 뒤 지난해 11월 최종적으로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후 국회 통과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발효되기에 이르렀다. 일본이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국가는 14개로 늘었다.
원자력협정 체결을 계기로 인도의 NPT 가입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포함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협정 체결 당시 아베 총리는 "이번 협정은 언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 인도가 책임있는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인도가 실질적으로 국제적인 핵확산 금지 체제에 참가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선 비난 목소리도
이번 협정이 발효되면서 일본 국내외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사실이다.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국가라는 점에서 NPT에 속하지 않은 국가와 협정을 맺는 것이 핵무기 개발로 직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핵군축 및 비확산 정책이 큰 전환점을 맞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은 이를 우려해 협정 본문에 '인도가 핵실험을 하면 협력을 중단한다'는 내용을 넣으려 했으나 인도 측의 거부로 본문이 아닌 부속조항에 포함되는데 그쳤다. 이에 베트남, 터키 등과 체결한 원자력협정에서는 협력중단 조항을 명기한 것과 비교해 크게 후퇴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한편 인도는 일본과의 원자력협정을 반드시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22년 인도의 인구가 약 14억명으로 예상돼 중국을 누르고 세계 인구 1위 국가로 도약할 전망이다.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인도는 2050년까지 전체 전력 중 25%를 원자력발전으로 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심각한 대기오염과 파리기후협약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번 협정은 이러한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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