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유럽 스타일에 프랑스식 현대미를 가미해 리모델링한 서울의 한 아파트 주방. [사진 제공 = 까사미아] |
급등하는 전세금에 지친 세입자들이 집을 사기 시작하면서 찬밥 신세였던 기존 아파트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기존 아파트 중에서도 준공 후 10년이 넘어 사람으로 치면 '중년'에 접어든 아파트가 예상외로 팔리고 있는 것. '중년 아파트'는 그동안 새 아파트를 쏟아내는 신규 분양과 재건축에 밀려 끝없이 추락하는 듯했다. 하지만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줄고 전세난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과거 아파트 투자를 통한 재산 불리기에서 안정적인 실거주 쪽으로 주택 시장 패러다임이 바뀌고, 집을 개인 취향에 따라 꾸미고 가꾸는 '이케아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중년 아파트도 오랜만에 빛을 보는 상황이다.
중년 아파트의 부활은 통계에서 드러난다. 매일경제가 올해 1분기 서울 강남·강북권에서 거래량이 가장 많은 강남·서초·송파구와 노원·성북·도봉구 아파트 연령별 실거래(500가구 이상 단지) 자료를 토대로 거래회전율을 조사한 결과 중년에 접어들기 시작한 준공 후 11~20년 아파트 거래가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3구는 준공 후 11~20년 아파트 거래회전율이 1.30%로 가장 높았다. 강북3구는 준공 후 10년 이하 아파트 거래회전율이 2%로 제일 높았지만 11~20년 된 아파트도 1.8%에 달해 그 뒤를 바짝 추격했다.
김혜현 렌트라이프 대표는 "주택 시장이 투자자에서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실속을 챙기는 매매 패턴이 자리 잡고 있다"며 "특히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 이전에 준공된 아파트는 고쳐서 내 집처럼 거주하기에 좋고 재건축 가능성도 열려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재건축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깨지면서 준공 후 30년이 지난 낡은 아파트 거래회전율은 강남3구의 경우 0.97%로 '중년'에 해당하는 준공 후 21~30년 아파트(1.07%)보다 낮았다. 강북3구도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아파트는 거래회전율이 0.32%로 가장 낮았다. 안명숙 우리은행 고객자문센터 부장은 "자금 여력이 있는 고객들도 요새는 재건축 아파트 외에 바로 입주가 가능한 아파트에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이 커지면서 가구 인테리어 업체도 분주하다. 한샘, LG하우시스 등은 건설사에 창호, 바닥재, 벽지 등 건축 자재를 공급하는 데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직접 고를 수 있도록 직영 전시장은 물론 홈쇼핑, 온라인쇼핑몰 등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내부를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하려는 30·40대 수요가 늘고 있다"며 "가구와 소품을 바꾸는 '홈 드레싱(Home Dressing)'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은 북유럽 스타일이 유행이다. 화이트와 그레이 등 무채색이나 감성적이면서 따뜻한 파스텔톤, 나무와 돌처럼 친환경 재료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도배와 마루를 교체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방은 거실과 차단돼 있는 구조를 열린 형태로 바꾸고, 욕실은 유럽 건식타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하부장이 있는 세면대를 넣고 욕조를 샤워부스로 탈바꿈시키는 사례가 많다. 발코니도 작은 정원이나 테라스로 단장하는 게 유행이다.
김수현 까사미아 씨랩 수석디자이너는 "준공된 지 10년이 지나면 수리가 필요한 부분이 생기는데 1990년대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급된 아파트 연령이 이제 15~20년쯤 되면서
■ <용어 설명>
▷거래회전율 : 아파트 재고량 대비 실제 매매 거래 비중. 회전율이 높을수록 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졌다는 뜻.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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