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서강대에서 부활하다
우리 사회에서 라틴어라고 하면 ‘죽은 언어’ 내지는 ‘어려운 언어’라는 통념이 강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언어를 다시 부활시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학계의 학자도,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교사도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라틴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 가득한 젊은 대학생들입니다. 이는 마치 유럽에서 대학의 시작과 비슷한 맥락을 가집니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시작한 중세의 대학은 교육기관이나 공권력의 주도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자 열망한 ‘수강생들의 모임(Universitas scholarum)’에서 기원합니다. 서강대에서 불어오는 라틴어의 바람은 마치 중세 대학의 시작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서강대학교에서는 매 학기 초급, 중급 라틴어가 개설되는데, 이 가운데 초급 라틴어는 매 학기 24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이채롭습니다. 학생들은 단지 서강대학교 학생들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근 주변 대학과 학점교류가 되지 않는 학생들마저도 청강생으로 참여합니다. 그 외에도 일반인과 대학원생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라틴어를 듣는 학생들의 출신뿐 아니라 그들의 전공을 살펴보아도 흥미롭습니다. 흔히 라틴어라고 하면 어학계열 학생들이 그들 전공에 도움이 되기 위해 들으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라틴어 수강생의 절반 이상은 이공계 학생들입니다. 다양한 전공의 이공계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라틴어가 가지는 수학적이고 체계적인 문법적 체계 때문입니다. 인문계열 학생들도 경영, 경제, 정치학, 법학 등의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로 구성됩니다.
종종 라틴어의 유용성과 타 학문과의 관련성에 대해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설명하면, 라틴어는 서구 유럽어와 학문의 모체와도 같은 언어입니다. 데카르트의 저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꼬지또 에르고 숨.)”라는 명문도 원래는 불어로 쓰였으나, 라틴어로 바꾸어 쓴 것이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사실만 보아도 학문에 있어 라틴어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선 법학과 의학은 라틴어를 떼어놓고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법학과 의학용어의 기원이 라틴어에 그 기원을 두기 때문입니다(contractus 계약, tumor 종양). 법학의 경우 어원적 기원뿐 아니라 로마법을 위시한 서양 법학의 원전들이 라틴어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밖의 학문으로는 철학, 신학, 정치학 등의 대부분의 인문학과 천체 물리학, 수학 등의 다양한 이공계 학문들 역시 라틴어와 관계됩니다. 가령 화학의 기호는 거의 대부분 라틴어 철자의 약어입니다(Ferrum 철, 약어 Fe). 그러나 학생들이 이렇게 라틴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실용학문에서는 맛볼 수 없는 학문의 진수와 가치체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밥벌이가 되는 공부만을 추구하는 대학과 사회에서, 그들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매체로 그들은 라틴어를 찾는 것이 아닐까!
이런 가운데 라틴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줄 교재가 문예림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었습니다. 그것은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 한동일이 저술한 「카르페 라틴어」제1권 품사론과 제2권 구문론입니다. 카르페 라틴어는 어떤 문법서도보다도 풍부한 설명과 단어, 문제와 해설을 담았다. 고전 라틴어 문법뿐 아니라, 현재 라틴어 교육에 사용되고 있는 방대한 외국 도서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더 나아가 라틴어 회화와 라틴 명언, 라틴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곳곳에 실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라틴어 문법에 재미와 풍부한 지식을 더했습니다.
실용성과 성과만을 추구하는 우리사회에서 라틴어가 부활하여 학문의 진수와 인간의 가치를 중심에 둘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