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가 예전 같지 않단다. 한국 드라마에 처음 열광했던 일본에서는 요즘 한국 배우나 예능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정치, 경제적 원인도 있겠지만, 콘텐츠 자체가 갖고 있는 새로운 매력이 적은 탓도 크다. NHK를 비롯해 일본 방송국들은 더 이상 한국 드라마를 정규 편성하지 않는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한국 방송 콘텐츠들은 ‘너무나도 한국적’이다. 우리네 일상 코드가 외국에서도 언제나 재미있고 신선할 수는 없다. 현지 소비자들이 당연시 여기는 가치를 건드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상당수 한류 콘텐츠가 스타 배우나 예능인의 명성에 기대서 판매되는 상황이다. 탄탄한 스토리의 구성, 누구라도 매료될 만큼 매력적인 배경 설정 등이 강점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질이 빈곤했던 것이다. ‘겨울연가’와 ‘대장금’이 왜 20-30년 간 지속될 만큼 스테디셀러인지 우리 스스로 자문자답이 필요한 상황이다.
↑ 이우환 ‘선으로부터’ |
재일 미술가로서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작업해 왔던 이우환은 ‘점’의 이미지에 집중했다. 초현실적이면서 단순화된 표현은 한국인의 정신세계 속에 있는 선(禪)의 고요함을 닮았다. 이우환과 함께 단색화 운동을 선도했던 박서보는 60년대부터 작업해 온 ‘묘법(描法)’ 시리즈가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캔버스에 색을 칠한 후 벗겨내며 연필로 선을 긋거나 한지를 붙여 가며 입체적인 화면을 연출하는 등 전위적인 박서보의 시도는 문화적인 호방함과 철학적인 품위를 동시에 추구하는 풍류도(風流徒)의 사상을 닮았다. 박서보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는 종이의 입체적 표현과 부조(浮彫)적인 요소들이 ‘인간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하종현의 단색화는 마대를 캔버스로 삼아 화면 뒤에서 재료를 밀어 넣어 색을 입히는 혁신적인 시도로 세계 미술 시장에 충격을 줬다. 평면적인 색깔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도 입체적인 색의 구현 과정을 중시하는 하종현의 세계는 오늘날 살아 숨쉬는 ‘촉각성’(tangibility)의 구현으로 고민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 전문가들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처럼 한국적인 정신세계를 가졌으면서도 그 표현이 과하지 않은 한국 단색화 작가들은 다른 분야와 산업의 한류가 어떤 방향을 지녀야 할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한류 콘텐츠로서 선전하고 있다. 설치미술가 서도호는 공간과 심리, 집단과 개인이라는 주제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어렸을 적 아버지인 동양화가 서세옥과 함께 창덕궁 연경당을 모방한 한옥에서 살았던 그는 과연 공간 속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한옥을 모방한 ‘집 속의 집’ 시리즈와 군번줄을 탑처럼 쌓은 ‘섬 원(Some/one)’ 등의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간 소외와 소속의 문제들을 다루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색채 산수화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세현은 작품 자체가 디자인 마케팅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명품 브랜드 페라가모는 이세현과 협업한 콜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겸제 정선, 안평대군의 작품처럼 보일 법한 진경 산수화 이미지를 빨간 물감으로 구현해 내며 강렬한 화면으로 바꿨다. 이세현의 작품세계에는 시대정신도 반영되어 있다. 분단의 아픔, 개발로 인한 추억의 상실, 도시에서의 빈부격차와 같은 요소들을 매우 부드럽게 화면에 담아내며 사람들이 작품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한류가 앞으로도 희망을 가지려면, 한국적 개성과 국제적인 보편성 사이에 창조적 긴장을 유지해야만 한다. 스토리와 기법 상의 혁신이 지속되어
[천영준 연세대 미래융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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