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해운사 한진해운의 생사를 판가름할 30일 채권단 협의회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30일 채권금융협의회에서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을 놓고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중단 여부를 결의한다. 채권단이 추가 지원을 거부하면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다.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제출한 유동성 확충 방안이 현실성이 없다며 자율협약을 중단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사실상 청산 절차를 밟게 되고 이렇게 되면 단순히 한 기업의 몰락을 넘어 해운업과 나아가 무역 등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이 무너지면 고용·항만쇼크, 글로벌 시장 퇴출, 수출 경쟁력 약화 등 국내 해운 기반을 무너뜨릴 연간 20조원 규모 ‘퍼펙트 쓰나미’가 몰려올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했다.
또 한진해운 퇴출시 아시아 시장이 무주공산이 된 가운데 선박 운임이 올라가며 머스크, MSC 등 글로벌 선사가 반사 이익만 얻을 것이라는 관측도 팽배하다.
이런 가운데 지지부진했던 한진해운 해외 선박금융 협상이 사실상 타결돼 막판 채권단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28일 한진그룹에 따르면 독일 HSH 노르드 방크, 프랑스 크레딧 아그리콜 등 해외 금융기관이 선박금융 상환 유예에 동의해 올해 갚아야 하는 선박금융 4700억원 자금 상환을 미룰 수 있게 됐다. 자금 사정에 그만큼 숨통이 틔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산항 물동량 붕괴 직격탄
한진해운은 미주·유럽 등에 총 41개 원양 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법정관리시 40여년간 쌓은 수십조원에 달하는 네트워크 자산은 사라지게 된다.
해운업계에서는 원양 서비스 노선을 1개 구축하는데 통상 1조 500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부산항 등이 영업망 상실 메가톤급 후폭풍을 맞는다.
8일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한진해운 청산시 국내 관련업계에 연간 20조 1500억원 경제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부산항은 터미널수입감소·선박관리·수리보험 급감 등으로 4400억원 어치 피해를 입고, 해운업계는 한진해운 매출 소멸, 운임 폭등으로 인한 물량 감소, 환적화물 급감 등으로 9조 2400억원 타격을 받는다.
동맹계약에 따라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시 해운동맹에서도 즉각 퇴출당한다. 이 경우 다른 동맹사들이 부산항을 환적 거점으로 이용할 이유도 없어져 물량 충격 ‘이중고’를 맞게 된다.
해운·부산항만 업계를 통틀어 2347명이 일자리를 잃고 업황 쇼크를 맞고 있는 조선업계도 안정적인 선박 발주량이 줄며 추가 부담이 이어질 전망이다.
◆업황부진 조선업계도 발주타격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수출 경쟁력까지 깎아먹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한진해운 퇴출시 국내 수출입 화주들이 매년 4407억원 운송비를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운송비 부담이 늘며 국내 수출가격까지 0.7~1.2% 오른다. 운임료 부담, 컨테이너 시장 혼란 등을 감안하면 7조 4500억원 피해가 예상된다.
금융시장 쇼크도 커진다. 국내 금융기관 차입금(8800억원), 항만 관련 업체 미지급금(6000억원), 선박금융(5800억원) 등 3조원대 국내 채권이 회수 불능 상태에 빠진다.
양창호 인천대 글로벌 물류대학원 교수는 “3000억선 채권단 유동성 지원이 문제가 아니다”며 “법정관리 이후에는 국가가 아무리 돈을 들여도 몇십년내 한진해운 같은 기업을 다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머스크 등 해외 선사는 반사이익
운임료 하락 ‘치킨게임’을 벌였던 해외 선사는 한진해운 붕괴로 전기를 맞을 것으로 관측된다.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톱 해운사들은 운임료 하락을 사실상 ‘방조’하며 경쟁자 정리에 나섰다”며 “한진해운이 무너지면 상대적으로 약했던 아시아 시장과 운임료 효과를 이들이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진해운 전체 컨테이너선 보유 규모(61만2000 TEU)는 세계 7위지만 아시아~미주 노선 시장 점유율은 7%로 머스크(9%), MSC(7%) 등 글로벌 1~2위와 맞먹는다.
KMI는 한진해운 퇴출시 미주항로 운임이 27.3%, 유럽항로 운임은 47.2%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우호 KMI 본부장은 “한진이 법정관리로 가면 가장 좋아하는 건 외국의 경쟁사들”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해운 구조조정을 한다고만 했지 조선산업처럼 체계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외국 주요 선사들은 국가가 나서 인수합병 등으로 몸집 키우기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한국은 채권단 논리로만 법정관리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적 선사는 유사시 화물을 운송하는 ‘제4군’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한진해운 법정관리가 국가 전반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폭풍 고려한 결정을
채권단이 법정관리행을 시사하자 한진해운은 기간산업 특수성을 고려한 정부의 최종 지원 가능성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경영권을 내려놓더라도 한국의 해운산업을 살리기 위해 한진그룹이 할 수 있는 모든 자구책을 내놓았다”며 “정부에서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고려하여 지원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진해운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은 “한진해운을 일개 개인회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유동성을 공급해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후에는 현대상선과의 합병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것만이 해운산업이 생존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김정환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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