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사들이 정부 지원을 업고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 해운사들은 생존에 급급한 모습이다.
한진해운 사태를 겪은 정부는 이달 안에 한국선박회사를 출범시켜 해운사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현대상선과 SM상선이 글로벌 선사들의 보폭을 따라 잡기는 쉽지 않아 장기적으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선복량 규모 세계 4위이자 중국 최대 해운사인 코스코(COSCO·중국원양해운)는 홍콩 해운사 OOCL(세계 9위)을 인수할 전망이다. 거래대금 규모만 40억달러(한화 약 4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OCL 인수전에는 프랑스 CGM-CMA(세계 3위)와 대만 에버그린(세계 5위)도 뛰어들었지만 코스코가 협상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유럽계 글로벌 선사들은 3건의 초대형 M&A를 성사시켰다. 프랑스 CMA-CGM이 싱가포르 냅튠오리엔트라인(NOL·몰락 전 세계 6~7위)을 24억달러(한화 약 2조8000억원)에 인수했다. 독일 하팍로이드(세계 6위)는 아랍에미리트해운(UASC·세계 10위)을, 덴마크 머스크(세계 1위)는 독일 함부르크수드(세계 7위)를 각각 인수하는 계약을 올해 안에 체결할 계획이다. 두 계약의 거래규모도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선사들이 최대 수십조원 규모의 거래로 경쟁력을 키워가는 것과 달리 현대상선(세계 13위)과 SM상선은 보폭이 넓지 않다. 현대상선은 해운동맹에 발이 묶인 상태이고, SM상선은 일단 컨테이너 정기선 사업에 안착하는 게 우선이다.
이제 막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고 전략적 협력관계라는 이름으로 해운동맹에 겨우 올라 탄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이 보유한 미주 서안의 롱미치터미널 지분 20%를 확보하기로 전날 결정했다. 롱비치터미널 지분의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던 MSC(세계 2위)가 나머지 지분을 가져가 80%의 지분율로 최대주주가 됐다. 현대상선은 롱비치터미널 지분을 바탕으로 아시아-미주노선의 운영 경쟁력을 키워갈 계획이다. 이외 국내 근해선사들과 손잡고 아시아 노선에서 공동운항도 시작했다.
문제는 2M(머스크+MSC)과 맺은 전략적 협력관계의 계약 조항 때문에 아시아-미주노선에서는 선대 확장에 나설 수 없다는 데 있다. 계약기간 3년동안 세계적으로 수출입 물동량이 가장 많은 아시아-미주노선에서 선대를 확장하지 못하면 몸집 불리기 경쟁이 한창인 글로벌 해운업계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걱정한다.
한진해운의 아시아-미주노선 영업망을 인수한 SM상선도 운신의 폭이 좁기는 마찬가지다. 해운동맹에도 가입하지 못했고, 선대를 확장할 자금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SM상선은 올해 안에 12척의 컨테이너선을 확보해 영업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컨테이너선 확보 이외에도 컨테이너박스, 주요 항만의 터미널과 영업조직 등을 확보하는 데 수천억원의 자금이 필요해 당장 규모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진해운 사태에 놀란 우리 정부는 지난해 10월 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오는 25일까지 한국선박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각각 50%, 40%, 10%씩 출자해 설립하는 한국선박회사는 해운사들의 선박을 매입한 뒤 싼 값에 다시 빌려준다. 해운업계는 이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선박을 확보할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해운업 지원에 너무 늦게 나섰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몰락한 한진해운 수준의 인프라를 갖춘 선사가 나오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가 해운사들의 부채비율을 200%로 제한하는 규제를 한 뒤 한국 정부는 한진해운 사태가 날 때까지 해운산업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해운사를 잃게 되면 해상 운임 상승으로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다. 이전까지는 부산항에서 바로 원양 컨테이너선에 물건을 실어 목적지로 보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글로벌 선사가 모항으로 삼는 항구로 물건을 보낸 다음 원양 컨테이너선에 실어야 해서다. 이렇게 올라간 비용이 수출기업의 영업이익률을 평균적으로 2~3%p 낮출 것으로 해운업계는 분석한다.
글로벌 선사를 가진 나라들은 자국 선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이나 성장을 지원한다. 코스코는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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