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으론 금융권의 '이자놀이'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닙니까? 왜 우리같은 영세 상인들이 피해를 봐야 합니까" 23일 만난 한 소규모 육류업체 대표 A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최근 3100만원어치 소 갈비 72박스, 2200만원어치 소 등갈비 123박스가 보관 창고에 묶이며 사업에 큰 타격을 받았다. 설 대목이 코 앞으로 다가와 거래처에서 물건 납품을 독촉하고 있지만 출고를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납품을 제 때 못해 대목을 놓치는 것은 물론, 거래선이 끊기는 것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A씨가 고기를 산 곳은 육류유통 중개회사 K업체와 D업체. 최근 문제가 된 6000억원대 '미트론(Meat loan, 육류담보대출)' 사기 사건의 주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미트론 피해를 본 금융사들이 일제히 담보 육류의 출고를 막았고, A씨의 상품 역시 창고를 빠져나올 수 없게 됐다.
미트론 사태로 인한 영세 육류업체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수입·유통업체에서 구매해 창고에 보관하던 상품들이 하루아침에 금융사의 대출 담보물이 돼 창고에 꽁꽁 묶이면서다. 매입한 육류가 중복 대출 사기에 담보물로 악용되면서 피해를 본 케이스다. 미트론은 냉동보관 중인 수입 육류를 담보로 이뤄지는 대출이다. 유통업자가 수입육을 창고업자에게 맡기면 창고에서 담보확인증을 발급하고, 이를 토대로 유통업자가 대출을 받는 구조다. 육류 유통업자들이 고기가 팔릴 때까지 2~3개월 간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주로 활용한다. 리스크가 큰 탓에 제1금융권에선 운용하지 않지만, 대출기간이 짧고 연 6~8%에 이르는 고금리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제2금융권에서 경쟁적으로 대출 규모를 늘려왔다.
허술한 담보확인증만 믿고 마구 대출을 해주는 방만한 행태는 이번 미트론 사태를 낳았다. 대출 담보가치를 평가하는 중개업체와 수입·창고업체 등이 짜고 하나의 육류로 이중 삼중 담보 대출을 받아낸 것이다. 동양생명 3803억원, HK저축은행 354억원, 효성캐피탈 268억원, 한화저축은행 179억원 등 막대한 대출이 집행됐다.
중복 담보 육류를 두고 피해 금융사들이 잇따라 담보권 실행에 들어간 가운데 영세업체들은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연체금이 2800억원에 달하는 동양생명은 자신들의 피해 최소화를 최우선으로 '선순위 채권'을 주장하는 등 독자 대응에 들어갔다. 이에 맞서 저축은행·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 업체들은 채권단 협의회를 구성해 남아있는 담보물을 실사하며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피해액이 수백 수천억원인 금융사 위주로 판이
[백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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