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물의 비밀’(감독 이영미) 속 혜정(장서희)이 그렇고, 우상(정석원)도 그렇다. 남들이 보기에는 마냥 행복해 보이고 인정받는 대학 교수 혜정은 별거 중이고, 사회의 시선 때문에 이혼은 하지 못한다.
우상도 비슷하다. 반듯하게 잘 자란 학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상처가 곪을 대로 곪았고 꾹 누르면 터져서 고름과 피가 날 것만 같다. 우상이 혜정의 환상 속에서 알고 있던 학생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혼외정사를 다룬 논문을 준비 중인 사회학과 교수 혜정. 연구 보조 학생으로 온 우상이 심리학과 학생이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두 사람은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혼외정사를 경험한 여성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점차 가까워진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혜정과 우상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물을 통해 두 사람의 내면 혹은 본질이 드러났을 때, 단순히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40살 교수 혜정과 21살 대학생 우상 아니,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본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의 미덕이다.
‘선생과 제자로서 넘지 않아야 하는 선을 언제쯤 넘을까’라고 침을 꿀꺽 삼키기 전에 ‘혜정이 우상을, 우상이 혜정을 바라보는 속마음은 뭘까’에 관심이 간다. 복사기와 카메라가 이들의 복잡한 마음을 대변하는 독특한 매개체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사물들에게 바치는 송가’에서 착안한 이 사물들은 혜정과 우상의 상황을 코믹하게 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간지럽게 혹은 진지하게 설명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 극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이다. 소위 ‘복수녀 역할 캐스팅 1순위’ 장서희와 ‘백지영의 남자’ 혹은 ‘스턴트맨 출신 배우’ 정석원이 각자의 이미지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작품을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다. 사랑과 도덕적 잣대에서 갈등하는 교수와 이 여자만은 다르게 사랑하고픈 청년에 완벽하게 몰입했다.
혜정과 우상이 인터뷰하는 횟집 주인 윤다경의 존재도 빠뜨릴 수 없다. 횟집 주인은 혜정에게 내재돼 있는 욕망을 끄집어내는 인물. 횟집에서 일하던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모든 것을 포기한다. 횟집 주인이 전하는 6분간의 정사 신은 데뷔작인 이영미 감독이 학생 때 들었던 실제 이야기를 묵혔다가 끄집어낸,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이 6분은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과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응축돼 있다. 아울러 그 정사 신을 추억에 젖어 이야기하며 행복해 하는 횟집 주인의 표정은 단순한 쾌락이 아닌 많은 것을 포함한다.
그 남자와 여자의 선택은 뭘까. 어쩌면 이들은 답을 이미 찾아놓았을지 모른다. 마지막 장면은 퍼즐 한 조각을 남겨둔 상황 같다. 물론 영화가 너무 쉽게 누군가를 갈구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은 아니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혜정의 갈등이나 우상의 마음에서 그것만이
어떤 상황에서든 유머를 넣으려고 한 감독의 의도와 상상력이 특히 마음에 든다. 여성의 시선으로 술집 남성들을 바라보는 몽환적인 느낌의 연출도 눈에 띈다. 청소년 관람불가. 17일 개봉 예정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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