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학동 만물시장은 7·80년대 골동품의 메카로 불리며 한때 전국에서 모여드는 손님들로 성황을 이뤘다. 도깨비 시장, 벼룩시장 등 이곳을 가리키는 명칭만 서너 개였을 정도로 호항을 누렸다.
100개가 넘던 골동품 상점은 이제 10여 곳도 채 남지 않았다. 그 빈자리에 각양각색 가게가 들어서 '없는 게 없는' 만물시장이 됐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고 어수선해진 시장에 손님들의 발길은 점차 끊겼다. 요즘은 하루에 손님 한명을 맞이하기도 힘든 지경이다.
낡은 의자에 앉아 작업 중인 박정도 씨는 30년째 수리가게를 운영 중이다. 어려서부터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데에 남다른 취미가 있던 그는 다른 건 몰라도 텔레비전 수리만큼은 자신 있다.
박 씨는 “의사들이 죽어가는 사람 살려내면 엄청 기쁘잖아요. 우리도 그 재미로 하는 거예요”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천덕꾸러기가 된 물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박 씨의 손길은 장인처럼 엄숙했다.
손님들이 오지 않는 가게를 묵묵히 지키는 시장 상인들은 “이 일은 중독이다. 죽은 물건을 다시 살려내서 누군가 사용할 때의 기분은 이 일을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며 입을 모았다.
손님이 뜸할 때면 직접 기타 연주도 하는 중고 기타 상점 사장님 이봉국 씨는 개경이 고향이다. 손님이 없을 때는 ‘타향살이’를 부르며 시름을 잊는 이 씨는 “젊었을 때부터 여기 나와서...아날로그 세대가 줄어들어 이제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나마 장인들이라고...기다리는 인내로 한다”면서 “그래도 한 번씩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곧이어 몇 명의 손님이 들어와서 빈 손으로
40년전 이 근처 고등학교를 다녔던 초로의 신사는 아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거닐며 기타와 함께 추억을 다시 샀다.
중고 물건과 함께 오래된 기억을 쫓는 느린 사람들, 황학동 만물시장을 지키는 장인들과 빛나는 시장의 불빛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밝혔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