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길을 잃은 아름다운 새를 뜻하는 ‘미조’(美鳥)가 제목 그대로 가야할 길, 즉 극장 개봉 기회를 잃었다.
계획대로라면 ‘미조’는 지난 5월 22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야 됐다. 그러나 개봉을 약 일주일 남긴 상황에서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이는 제한상영가 전용 극장이 없는 현실상 극장 개봉이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정작 개봉할 상영관이 없는데 제한상영가 등급을 준다는 건 “해당 장면을 수정, 편집하고 재심의를 요구해라” “재심의가 싫다면 그냥 개봉을 포기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개봉해라” 등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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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포스터 |
영등위에 따르면 ‘미조’는 총7가지 장면에 대한 지적을 받았고, 폭력성의 수위가 매우 높고 비윤리적인 설정 등 일반적으로 사회윤리에 어긋나며 선정성, 폭력성, 모방위험 등의 요소가 과도하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아이가 친부를 찾아가 복수 한다’와 ‘여자로써 접근해 사랑하게 만들고 죽음으로써 복수 한다’는 설정 자체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 왜곡해 사회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의 정서를 현저히 손상할 우려가 있다.
특히 영등위는 폭력성, 성기 노출, 선정성, 아이를 버렸다 보다는 버려졌던 딸이 아빠에 대한 복수를 위해 유혹한다는 설정을 근친상간이라 지적하며 주요 문제로 삼았다.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극중 미조와 아빠 우상의 관계는 근친상간보다는 미조의 생계유지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근친상간이다. 그럼에도 영등위의 등급 판정을 새롭게 하려면 설정을 편집해야 되는데, 이는 결국 첫 장면부터 편집해 영화의 전개를 180도 다르게 완성해야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에 공식 초청됐을 당시 ‘미조’는 오리지널 버전으로 문제없이 상영됐다.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받은 바 있다. 영화제의 상영과 극장에서의 상영 기준이 애매모호해 그저 황당하다.
황당무계한 상황을 알리듯 연출을 맡은 남기웅 감독을 포함해 정지영 감독, 김경형 감독, 정지욱 영화평론가, 유바리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시오타 토키토시 프로그래머 등이 많은 이들은 해당 등급에 어리둥절함을 표현하며 극장 개봉을 향한 지지선언을 이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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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상물등급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
청소년관람불가등급을 받을 것이라 예상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개봉 일을 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또 다시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이번에는 영상의 표현에 있어 일반적인 사회윤리에 어긋나는 내용이 표현되어 있어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의 정서를 현저히 손상할 우려가 있는 제한상영가 영화라는 판정.
해당 장면을 블러 처리했음에도 제자리인 상황이다. 결국 ‘미조’ 측은 국내 개봉을 포기하고 일본에서만 상영한다.
‘미조’ 외에도 ‘한공주’ ‘뫼비우스’ ‘님포매니악’ 등이 등급 때문에 울고 웃었다.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는 세 번째 심의 끝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내용 전달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본래 김기덕 감독이 생각했던 방향은 전면 수정됐을 것이다. 등급 때문에.
한국 감독과 한국 배우가 열심히 찍은 ‘미조’가 자국에서는 천대받고 타국에서는 환대받는 상황이 안타깝다. 분명 문화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영화 등급을 판정하는데 이 놈의 ‘등급’ 때문에 어떤 작품은 작품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말로는 극장 환경과 영화를 관람할, 이를 관리할 이들의 인식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등급 때문에 울고 웃는 영화들의 잣대가 확실하지 않아 그저 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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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상물등급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
대중들의 작품을 즐기는 눈높이와 고를 권리, 관람할 권리, 영화 제작을 위해 노력한 제작진 등을 생각한다면, 등급 판정에 대한 정확한 잣대가 다시 공지되거나 여러 명의 의견을 수렴해 어느 하나 불만이 없는 공정한 등급 판정이 시급하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트위터 @mk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