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여 편의 성인영화를 연출한 박범수 감독이 코믹 멜로 영화 만들기에 나선 작품인 영화 ‘레드카펫’은 말초신경을 자극할 법하다. 박 감독의 과거 이력, 성인영화 연출 장면이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공사’를 하고 남녀의 애정신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상상 말이다.
예상대로 있긴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긴 하지만 그것에 초점을 맞추진 않았다. 적절한 선에서 자제하는 노력이 돋보인다. '야하다'는 소재를 적절히 잘 사용해 섹시코드와 재미, 감동을 적절하게 버무렸다.
박범수 감독의 실제 이야기는 극 중 윤계상이 연기한 박정우 감독의 일화들로 영화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상업영화 연출을 꿈꾸지만 에로영화 속에 갇혀있는 박정우 감독. 그가 그토록 바라던 멜로영화를 연출하기 위한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는 스크린을 통해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편견과 선입견에 좌절했던 감독의 이야기. 영화를 통해 이제는 웃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박범수 감독의 과거 아픔과 슬픔은 은연중 비친다. 그렇게 세상에 치이고 치인 감독은 자신이 찍고 싶던 영화를 찍는 데 성공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도전할 만한 것이었다. '레드카펫'은 박범수 감독이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기할 만한 점은 엉성하고 오글거리는 부분도 있는 영화지만 감독은 오정세를 이용해 재미로 활용하는 기지를 부리는 등 이야기 전개와 화면 구성, 연출력에서 꽤 괜찮은 실력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허무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 감독의 이야기라 더 진실하게 와 닿는 점도 좋다.
깔깔거리며 박장대소할 신이 많은 점도 꼬집을 만하다. 에로영화 조감독 진환 역을 맡은 배우 오정세가 그 중심이다. 진환은 “웃긴 영화는 관객을 웃기면 되고, 에로 영화는 관객을 꼴리게 만들면 돼”, 흥분한 상태의 황찬성에게 “너 지금 나 뭐로 찔렀냐?” 등의 대사를 구사하는데 관객의 배꼽을 완벽하게 사로잡는다. 실생활 같은 19금 언어구사력이 감탄과 존경을 표하게 한다.
비중은 작지만 조달환과 황찬성도 웃음을 전한다. 에로영화 배우 딸기를 연기한 신지수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심의 탓 수위 조절로 과감함이 줄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수준이다. 전직 에로배우 출신 대표로 나오는 이미도의 역할도 포인트로 작용한다.
고준희는 예쁘게 나온다. 극 중 은주는 아픔을 간직한 아역 출신 연기자. 부모에게 등 떠밀려 연기하다가 꿈을 잃었으나 박정우 감독으로부터 힘을 얻어 다시 진정한 연기자가 되는 인물이다.
영화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들을 ‘19금 영화계의 어벤져스 군단’이라고 홍보하는데, 영화를 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안다. 딱 적확한 표현이다. 117분. 15세 관람가. 2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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