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영화나 TV 애니메이션, 예능프로그램, CF 등 성우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작품이나 프로그램 등이 방영되고 나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는 성우들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들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온 힘을 목소리에 담아내는 것이 이들의 전부다.
하지만 최근 성우들의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외화의 경우 더빙이 아닌 자막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고, 방화마저 아이돌, 배우 등 흔히 ‘인기 스타’들을 내세우면서 성우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 예능프로그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화면 뒤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최재호 성우를 만나 그들만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 |
Q. 성우의 길로 들어선 게 1996년이라 들었다.
A. “원래 전공은 건축이에요. 1994년도에 아르헨티나에서 왔는데 엔지니어 일을 하는 친구가 있어서 구경을 갔다가 우연히 성우 제안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엔지니어가 더 마음에 들었는데 그렇게 됐네요, 하하.”
Q. 원래 꿈이 성우였나? 배우로도 활동을 했던데.
A. “전 성우 아카데미 출신인데, 들어가 보니 선배들이 다 연극배우 출신이더라고요. 그래서 극단에 들어갔어요. 39살 때 연극 무대에 들어갔는데 정신이 없었죠. 2010년부터는 무대에도 서기 시작해서 지금도 1년에 한 두 번씩 올라가요.”
Q. 무대에서 연기도 하고 성우로서 목소리 연기를 하는 데, 어떤 점이 다른가.
A. “탤런트들은 카메라나 앵글에 잡히기 위해 멋있는 모습을 보이려 준비하죠. 성우 같은 경우는 인터네이션 즉, 억양이 중요하죠. 양아치는 양아치의 억양이 있고,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의 억양이 있어요. 표정 연기를 하는 부분은 똑같아요. 얼굴로 연기를 해야 그 캐릭터에 맞는 억양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거든요.”
Q. 어떤 작품들에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나.
A. “‘날아라 호빵맨’에서 식빵맨 목소리도 하고, ‘명탐정 코난’에서는 하인성 목소리를 연기했어요. 이 밖에도 ‘강아지 똥’ ‘꽃보다 남자’ ‘블리치’ ‘은하철도 999’ ‘원피스’ 등에 참여했어요. TV 예능으로는 ‘나는 남자다’ ‘1대100’ ‘무한지대큐’ 등에 참여했고요. 이밖에도 CF, 외화 등을 작업하기도 했어요.”
Q: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나?
A: “‘블리치’ ‘사무라이’ ‘코난’ ‘호빵맨’ 등 모든 캐릭터가 다 마음에 들었어요. 캐릭터가 정말 많은데 올망졸망한 것부터 양아치 같은 캐릭터 등 정말 다양한 목소리 연기를 했어요.”
![]() |
Q. 목소리 연기에 몰입할 때 자신 만의 제스처나 습관 같은 게 있나?
A. “마이크 앞에서 녹음을 하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잖아요. 어디 한 곳을 잡고 녹음을 해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힘을 줘야 하는데 손을 ‘쫙’ 펼치면서 하면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또 두 손이 가벼우면 편한데 대본을 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제약이 많죠.”
Q. 하루에도 많으면 다른 작품으로 4편 가량을 녹음한다고 하던데, 힘들지 않나?
A. “아무래도 여러 가지 캐릭터를 하루에 연기하려다 보니 다중이가 되는 것 같기도 해요. 하하. 그래도 받자마자 대본을 분석하고, 캐릭터를 바로 잡는 게 일상이 됐어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주문하는 것도 늘 캐릭터를 연구해오라는 거예요.”
Q. 안타깝게도 요즘 성우들이 설 자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던데.
A. “네덜란드 같은 경우 외화를 들여오면 고국의 말로 더빙을 하게 되어 있어요, 법적으로. 일본이나 미국 등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자막으로 주로 사용하는데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하더라고요. 순수 우리나라말을 지키기 위해서 더빙을 한다는 정당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왜 더빙이 아닌 자막을 택한 걸까.
A. “이유는 간단해요. 예를 들면 자막을 만드는 데에는 50만 원이 든다면, 성우 더빙을 사용하면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를 들여야 하죠. 성우로서 우리나라말을 꼭 지켜야 하나는 생각이에요.”
Q. 애니메이션 영화나 예능 등에서 보면 아이돌가수, 배우 등이 성우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성우들이 설 자리를 빼앗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A. “그래도 성우라는 직업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기업의 홍보라든가, 하물며 은행 기계에서도 소리가 나오고, 교육 자료 등 성우들의 목소리가 한두 군데서 쓰이는 게 아니거든요. 사실상 아이돌에게 치이고 배우, 코미디언들에게 치인다고들 하는데 그 경계가 무너진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잖아요. 그걸 탓할 게 아니라 이제 우리도 움직이는 거죠.”
Q. 움직인다면 배우로의 이동을 말하는 건가.
A. “성우도 그래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어요. 하나만 쭉 잘하는 걸 떠나서 벽들이 무너졌으니까 재빠르게 나와야죠. 캐릭터 밖으로 나와야 할 때인 것 같아요.”
Q. 이 작업을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있나?
A. “낭독공연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연극을 올리기 위해 하는 사전 작업이라고 보시면 돼요. 무대 위에서 의상을 갖춰 입고, 동선, 배경 등 실제 연극 무대랑 똑같은 곳에서 연기를 하는 거죠. 사실 한 번 시도해 봤는데 반응이 꽤 좋더라고요. 옛날 외화에 나왔던 선배와 지금의 사람들이 합쳐져서 연기를 한다면 고전 장르도 하나의 색다른 작품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Q. 마지막으로 성우라는 직업에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A. “성우가 일자리도 미미한데 복지는 터무니없어요. 노후에 뭘 해주는 것도 아니고 건강검진을 해주는 것도 아니죠. 일단 다른 성우들에게 조금만 참아달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런 후에 우리의 정당성을 피력해야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세미나, 출판 등의 재능기부를 통해 우리의 아군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여수정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