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8개월 동안 비극적인 여자로서 살아와서 그런지 드라마가 끝났음에도 그 울분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소원이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역사처럼 내 인생에 기록된 것 같아요.”
MBC 일일드라마 ‘소원을 말해봐’에서 한 많은 여자 한소원을 연기했던 오지은은 드라마가 끝났음에도 당분간 소원의 비극적인 삶이 주는 여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며 힘들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극중 한소은은 결혼식 당일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됐을 뿐 아니라, 병실에 누워있는 남편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누명까지 뒤집어쓰면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처음부터 눈물을 한 바가지로 흘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디 이뿐인가. 30년 만에 자신의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됐을 뿐 아니라, 이후 간신히 친모를 찾았지만 친모인 혜란(차화연 분)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딸 소원을 힘들게 할 뿐이었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 소원을 파악했던 부분과, 촬영을 하면서 소원의 모습과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어요. 아무리 일일극에서 여자 주인공이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 있지만, 그 많은 것들을 인내하는 착한 소원의 모습이 때때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었죠.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는 일일드라마의 바람직한 모습과 오지은이라는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에 상충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작품의 장르와 이를 보는 시청자들, 그리고 외적인 부분들도 있는 거니까. 제 고집만 부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최원석 PD님을 믿었어요. 연출자 나름의 원하는 방향도 있는 거니까 배우로서 무조건 믿는 것, 그게 맞다고 여겼거든요.”
“‘소원을 말해봐’를 하면서 극중 소원의 마음고생을 직접 겪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감정소모가 심했어요. 덕분에 전보다는 성숙은 했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고 남아있는 감정은 때대로 저를 먹먹하게 만들어요. 여행을 간다든지 해서 자정작용을 빨리 거쳐야만 할 것 같아요.”
힘든 만큼 얻은 것은 많았다. ‘소원을 말해봐’가 첫 타이틀롤 작품인 만큼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 오지은은 이를 통해 한 작품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가 됐다는 것이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극을 이끄는 타이틀롤이다보니 작품에 임하는 생각 자체가 달랐던 것 같아요. 그동안 작품에서는 아무리 주인공이었어도 의지할 만한 또 다른 주인공이 있으니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소원을 말해봐’는 달랐죠. 여러 아쉬움들은 있지만 그럼에도 한 작품을 책임지는 역할을 해냈다는 것에 의미가 커요. 큰 산을 넘은 만큼 여유도 생겼을 뿐 아니라, 소원을 통해 워낙 ‘인생의 희노애락’을 경험한지라 감정연기에 대한 갈증 또한 어느 정도 해소된 듯해요.”
오지은의 프로필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다. 바로 대학교 시절 연기가 아닌 연출을 공부했다는 것이다.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여대생이 9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로서 서기까지, 의외의 경력에 신기해하자 오지은은 ‘감독 오지은’가 아닌 ‘배우 오지은’으로 뒤바꾼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학교를 다닐 때는 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다양한 독립영화를 찍기도 했죠. 제가 연기를 하게 된 계기는 미장센 영화제에요.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독립영화인들에게 있어 미장센 영화제는 무척 중요한 영화제이죠. 이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날 선배가 연기 좀 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연기인만큼 평소 연기분야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해야 하는데, 그 일환으로 연출과 학생들끼리 서로 작품에 출연해주기도 했죠. 원래 제 작품을 만들 때 연기를 잘 안 하는데, 그건 그냥 해드리고 싶더라고요. 제 영화 스케줄까지 빼면서 도와드렸죠. 결과요? 재밌는 것이 제 작품은 상을 못 받았는데, 선배 작품을 통해 연기상을 받았다는 거예요. 이를 통해 본의 아니게 제 이름이 ‘배우’라는 직업으로 독립영화제로 알려졌고, 그로 인해 연출 쪽과 연기 쪽 양 갈래 길을 놓고 고민을 하게 됐죠. 만약 독립영화계가 활발한 상황이었으면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내 길이 아닌데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감독으로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 사진=미스틱 엔터테인먼트(가족액터스) |
“일단 그 때 같이 했었던 선배님들이 여전히 입봉을 못하고 계세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중 올해 한 분이 입봉 했는데, 그 선배가 바로 제가 연기상을 받았던 작품을 연출한 그 선배라는 거예요. 바로 ‘내 심장을 쏴라’의 문제용 감독님이세요. 계속 시나리오 쓰면서 때를 기다렸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아직도 연출이 길인지 모르겠어요. 연기분야의 스테프로서 현장을 경험하는 걸로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지금 여기까지 왔죠.”
연출을 하다가 연기를 하게 된 여배우. 연출 공부를 한 만큼 촬영에 임하기 쉬웠을 것 같다고 말을 하자 “그건 또 아니다”고 말했다.
“초반에 조금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너무 이성적으로 연기하지 말라고. 생각 없이 연기한다는 것이 어려웠어요. 아무 생각 없이 막 살았어야 했었는데…초반 받았던 것들이 지적 들었던 것도 이 같은 부분이었죠. 연기 생활을 하면서 목표는 ‘다 내려놓기’예요. 사실 연출을 하게 된 건 바로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아마 저는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 내 메시지를 아무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전하고 이를 통해 대중과 소통의 끈이 생긴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죠. 제일 처음 연출을 하게 된 건 순수하게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소원을 말해봐’를 통해 해보고 싶은 연기를 마음껏 해봤다는 오지은은 현재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해보고 싶은 연기는 다 해본 거 같아요. 이제 남은 건 좋은 연기를 하는 것뿐이에요. 예전에는 쉬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는데, 이제는 좋은 작품이 오기까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가장 큰 목표요? 거장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는 거예요.(웃음)”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