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가 넘어선 안 될 인간의 도(道)를 넘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희희낙락 농담을 하는 것은 기본, 남은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고, 남주인공은 마치 라이벌의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 여자주인공과 결혼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한다.
지난 2일 ‘압구정 백야’에서는 일반 사람이라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그려졌다. 극중 여주인공 백야(박하나 분)와 연애 끝에 결혼을 성공한 조나단(김민수 분)이 신혼이 단 꿈에 젖기도 전에 비명횡사한 것이다.
아무리 드라마가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라고 하지만 개연성 없는 갑작스러운 전개를 접한 시청자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문제는 ‘압구정 백야’가 문제작을 낳기로 유명한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임성한 작가는 ‘하늘이시여’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 등 막장을 넘어 ‘괴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을 집필하며 비난을 받아왔었다. 특히 ‘압구정 백야’의 전작인 ‘오로라 공주’는 극 중 인물들의 이유 없는 죽음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했었다.
↑ 사진=압구정 백야 캡처 |
극 중 조나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먼저 드라마 외적으로는 임성한 작가의 특기인 데스노트(작품 속 인물들이 갑자기 죽는 것을 비꼬는 표현)가 시작됐다는 것이며, 내적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자주인공인 백야와 남자주인공인 강화엄(강은탁 분)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압구정 백야’에서는 백야가 결혼하기 전 강화엄과 타를 타고가자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피를 흘리는 꿈을 꾸는 모습을 그린 적이 있다. 그때 작가는 백야의 친할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옥단실(정혜선 분)을 통해 “둘이 천생연분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을 했다. 즉 임성한 작가는 처음부터 강화엄과 백야의 삼신할미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강화엄과의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 조나단과 백야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게 됐고, 임성한 작가는 생각보다 비중이 커져버린 조나단을 죽이고 이들의 본격적인 사랑을 그리기로 작정한다.
일반의 드라마라면 쉽게 접하기 힘든 비인도적인 발상이지만 이미 작품을 통해 여러 차례 사람을 죽인 임성한 작가는 이 같은 문제해결방식을 사용한다. 사람의 죽음을 수단처럼 여기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힌데, 더욱 어이없는 장면은 이 이후에 벌어졌다. 아무리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라지만, 이후 그려진 과정들이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이다.
조나단의 친동생인 조지아(황정서 분)은 오빠가 죽었음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맹장수술로 앓던 서은하(이보희 분)는 방구를 뀌며 앓고 있던 병이 나았음을 알린다.
이 뿐 만이 아니다. 6일자 방송에서는 백야를 돌보는 간병인은 심각한 병실 안 분위기와 맡지 않는 눈치 없는 간병인의 해맑은 미소와 우스갯소리는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남편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후 충격으로 말도 잃고 음식도 거부하는 백야가 있음에도 히죽거리며 귤이 맛있다며 그녀를 간호하는 강화엄에게 권하는 장면, 죽을 것처럼 행동하는 백야를 걱정하는 강화엄의 말에 맞춰 “안 된다. 개동밖에 죽어도 이승이 낫지”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은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었다.
심지어 도미솔 모녀는 조나단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이고 그 몸이 아깝다. 탄탄하니 군살 하나 없이, 이태리 박물관에서 본 조각상보다 더 예술”이라며 살아생전 그의 수영복 몸매를 떠올리는 광경은 슬픔에 공감한 인간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행동은 강화엄에게도 있었다. 백야의 유일한 가족인 올케 김효경(금단비 분)을 찾아간 강은탁은 다짜고짜 “조나단과 백야가 인연이 아니었던 것”이라며 “내년 쯤 백야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물론 조나단의 장례를 치른 뒤 일주일도 안 지나서 한 말이다.
현재 ‘압구정 백야’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1부터 100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과 대사의 연속이다. 이미 벌어진 일, 더 이상 안방극장은 ‘압구정 백야’가 막장이 아니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생명의 존엄성만을 지키고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