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정예인 기자] 연쇄살인마는 한국 영화 속에서 일정한 스펙트럼을 가진 채 등장한다. 사이코패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잔혹하고, 특히 연약한 여성에게 가차 없으며, 때로는 사람을 죽이는 게 취미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훑어보면 이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잔혹함을 어필(?)한다.
스릴러 작품은 기본적으로 ‘섬뜩함’ ‘잔혹함’ ‘공포’ ‘두려움’ 등의 감정을 자극하면서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플롯(서사 작품 속에서 개별적인 사건의 나열)에서 어떤 방식으로 범인을 소개하는 지에 따라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가지각색이다.
때문에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탓에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하기 시작한 연쇄살인범을 다룬 ‘실종’(2008),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다룬 ‘추격자’(2008), 아직도 잡히지 않은 채 미궁에 빠진 화성 연쇄살인을 다룬 ‘살인의 추억’(2003), 세 작품은 비슷한 듯 다른 구성을 취하고 있다.
↑ 사진=실종 스틸컷 |
지난 2007년 70대 어부가 대학생 커플 등을 연쇄살인 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아 제작된 ‘실종’은 촌부로 위장한 연쇄살인범 판곤(문성근 분)의 잔혹함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사라진 여동생을 찾아 나선 현정(추자현 분)은 어수룩한 촌부 판곤(문성근 분)을 만나게 되고, 그를 미심쩍게 여겨 뒤를 밟는다. 현정은 결국 판곤에 붙잡혀 동생이 느꼈을 공포를 똑같이 경험하게 된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가 연상되는 이 작품은 현정이 화자가 돼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때문에 현정이 판곤이 범인임을 알아챘을 때 느꼈을 공포, 그리고 그의 잔혹한 행각을 몸소 경험하며 느껴야했던 비참함은 관객에게 가감 없이 전달된다. 특히 촌부의 어수룩함과 연쇄살인마의 잔혹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판곤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악마처럼 느껴져 경악스럽다.
↑ 사진=추격자 포스터/스틸컷 |
이는 ‘추격자’의 플롯과 비견된다. ‘추격자’는 ‘실종’과 달리 범인의 정체를 처음부터 밝히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실제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유영철을 모티브로 삼은 ‘추격자’는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김윤석 분)와 연쇄살인마 영민(하정우 분)의 대결 구도로 이야기가 전개 된다.
중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여성 직원들이 연이어 사라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그들을 찾아 나서고, 그러던 중 옷에 피가 묻은 수상한 영민과 마주친다. 중호는 그를 범인이라 생각하고서 개인적인 수사를 펼친다.
바로 여기서 ‘추격자’와 ‘실종’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실종’은 주인공이 범인의 정체를 모를 때, 관객 역시 범인의 전체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추격자’는 주인공이 범인의 정체를 모르더라도 관객은 알 수 있다. 즉, ‘실종’은 순진한 얼굴을 한 촌부가 연쇄살인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추격자’는 주인공이 범인을 혹여나 놓치게 될까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재미를 선사한다.
↑ 사진=살인의추억 스틸컷 |
앞선 두 작품과 완전히 다른 불편함을 유도하는 작품도 있다. 송강호와 박해일의 팽팽한 신경전이 돋보이는 ‘살인의 추억’이 그것.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밝히지 않는 것으로 끝맺고, 관객을 허탈함에 빠지게 만든다. 이 허탈감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관객을 다시 한 번 충격에 빠뜨린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연이어 살해된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아 제작됐다.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지역에서는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과 서태윤(김상경 분)이 담당 형사가 된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수사 방식을 지향,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범인으로는 같은 사람을 지목한다. 두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하는 인물은 순진한 얼굴을 한 박현규(박해일 분). 그러나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물증은 발견되지 않고, 결국 그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박두만과 서태윤은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끝내 찾지 못해 놓아줄 수밖에 없고, 이들은 허탈감에 빠져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를 본 관객은 연쇄살인범의 잔혹함에 한 번, 증거를 남기지 않은 영악함에 두 번, 실제 화성연쇄살인범이 체포되지 않았다는 것에 세 번, 경악한다.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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