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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혜는 오래 전부터 ‘패셔니스타’라는 수식어를 받아왔다. 세련된 패션으로 사랑받아온 그는 베이비복스 막내 시절부터 미적 감각과 손재주를 뽐내왔다. 작품에서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액세서리들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패션 일러스트계의 세계적인 거장 토니 비라몬테스의 한국 전시회에 병행해 열리는 한국 아티스트 6명의 합동 전시회에 작가 자격으로 참여하며 그 실력을 입증해보이기도 했다. 가수 출신 연기자로 입지를 다져가는 동시에 남다른 감각을 발휘하며 미술, 패션 디자인계로 활동 영역을 확장해가는 듯 했다.
2013년 드라마 ‘미래의 선택’ 종영 후 작품으로 대중과 교감할 기회가 적었지만 지난 5월, 중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 소식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패션 디자인에 도전한다는 소식에 윤은혜를 향한 따뜻한 응원과 기대의 시선이 컸다.
야심찬 활동을 다짐한 윤은혜였지만 뜻하지 않게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디자이너로서 치명적인 ‘표절’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현 시점, 그의 상황은 사면초가(四面楚歌)다. 표절뿐 아니라 프로답지 못한 입장 표명으로 인해 20년 가까이 연예계 활동을 통해 쌓아온 사랑스러운 이미지마저 갉아먹고 있다.
윤은혜는 지난 달 29일 중국 동방TV의 디자인 서바이벌 프로그램 ‘여신의 패션’에서 ‘나니아 연대기’를 주제로 하얀색 코트에 날개 모양의 레이스를 단 디자인으로 1위를 했다. 하지만 지난 4일, 아르케 윤춘호 디자이너가 “SNS를 통해 윤은혜 디자인에 대해 자사 디자인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이 됐다.
윤은혜 측은 이에 대해 “윤춘호 디자이너의 2015년 F/W 상품을 협찬 받은 적이 없다”, “똑같다고 할 만한 것은 하얀 의상에 프릴이 달려있다는 것 뿐"이라며 표절이 아니라는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급기야 “FW 컬렉션을 앞두고 윤은혜라는 이름을 도용하지 말라”는 경고성의 메시지를 통해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윤은혜의 해명에도 불구, 대중은 표절 쪽에 무게를 두는 듯 한 분위기다. 한국 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K) 측도 “표절로 보인다”는 자체적인 판단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개진했다. 또 과거 윤은혜가 출연했던 한 드라마에서 디자이너로 참여했던 A씨는 윤은혜의 패션 관련 욕심에 분통을 터뜨렸던 일화를 자신의 SNS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윤은혜가 ‘여신의 패션’에서 선보였던 다른 의상들도 타 브랜드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윤은혜의 주장에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 디자이너는 8일, 아르케 공식입장을 통해 윤은혜 디자인 관련 논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윤은혜와 팀을 이뤄 ‘여신의 패션’에 참여한 스타일리스트 노광원 씨가 지난 8월 15FW 컬렉션 의상을 협찬 받았으며, 문제가 된 프릴 장식이 아르케 15 FW 컬렉션의 메인 디테일이라는 설명이다. 두 팩트의 오묘한 상관관계를 부인하기 쉽지 않다.
또 윤 디자이너는 윤은혜 측의 ‘연예인 이름을 도용한 홍보’ 주장에 대해 “윤은혜라는 이름으로 노이즈 마케팅 할 이유와 목적이 없으며” “그 어떤 디자이너도 이러한 논쟁으로 브랜드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면서 홍보하는 일은 없다”고 강력히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표절의 포인트로 지적된 오버 코트&프릴 장식이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닌, 의상 디자인에서 흔히 사용되는 패턴이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윤은혜의 디자인은 다소 아쉽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은 없다 하지만 논란을 피해가기엔 일반인이 보기에, 그리고 전문가의 시선에도 너무나 비슷했다. 오죽하면 윤 디자이너가 “윤은혜에 형식적 사과와 해명이라도 듣고 싶었다”고 했을까.
윤은혜는 이번 디자이너 도전에 앞서 많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제아무리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윤은혜라 해도,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많은 기성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몇년새 그가 심취해 있는 미술 분야와 달리, 디자인은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자칫 특정 디자인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과도하게 발현했다간 따라했다는 시선을 받을 여지가 많다. 어쩌면 논란이 된 이번 윤은혜의 디자인은, 더 잘 해보려는 욕심이 빚어낸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작곡가 겸 싱어송라이터 윤종신은 과거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표절은 당사자가 인정하기 전까지 답은 없다”며 표절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바꿔 말하면, 표절 여부는 당사자만 알고 있는, 즉 양심의 문제라는 것이다.
윤 디자이너 측이 윤은혜의 디자인이 표절이라는 확신을 거듭 피력한 가운데 윤은혜 측 역시 표절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 모두 좀처럼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이니, 해당 디자인을 통한 사업적인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표절 여부에서 나아가, 현재 대중의 공분을 더 사게 된 지점은 이번 논란에 대한 윤은혜의 태도에 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유다.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고, 논란에 대한 진솔한 심경을 담은 입장 표명이 다시 한 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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