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최윤나 기자] 이준익 감독이 사극영화로 돌아왔다. 영화 ‘사도’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법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사도 세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던 이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해석으로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해질 예정이다.
“사도 세자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정조의 아버지로서 뒤주에 갇히는 사도로 많이 소개됐습니다. 사도 세자를 주체로 하는 영화는 거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사도 세자 자체가 주체인 영화를 심도 있게 들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어요. 근데 사람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온전하게 그의 실체를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모든 인간은 관계성 안에서 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거니까요. 세상에 아버지 없는 아들은 없다고, 영조와의 인과성이 첫 번째 관문이었습니다. 날 때부터 미친 인간은 없으니까요. 또 후반은 어린 정조의 입장이에요. 사도는 영조의 아들이면서 정조의 아버지인데, 정조와 사도의 관계성 안에서 사도라는 인간의 내면이 온전하게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영화 전체의 맥락입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이렇듯 이준익은 사도 세자를 영화화시키면서 이준익 만의 해석을 적용했다. 하지만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실화인 이 이야기를, 다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
“영조의 아들 사도가 아버지로부터 죽임을 당한, 인과성이 분명한 비극이에요. 항상 사건을 단정 지어서 규정하고, 그 규정된 사건으로 기억하는 것은 편린에 불과하죠. 그 편린은 어떤 맥락 안에서 존재하고, 세월이 지나 그 맥락을 되짚어봄으로써 비극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는 가라는 거예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우리에게 그저 과거 영국의 대 작품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현대 문학사나 문화사에 유산처럼 남았다고 우리는 배웠잖아요. 그것처럼 이 땅에서 벌어진 선조들의 비극이 참혹했으니 살아남은 자에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남기를 바라는 게 바로 영조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죽고 나서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라고 지은 거죠. 근데 이게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일까요?”
그의 말처럼 ‘사도’의 이야기는 왕과 왕의 아들의 비극적 상황을 다뤘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누구든지 자신의 가족사에서 아픔과 슬픔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특히 우리나라는 시련이 많았던 역사의 연속이었잖아요. 그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모든 가족사에는 말로 꺼낼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의 아픔과 역사가 없을 수 없어요. 단, 자라나는 후손에게 그런 비극을 숨기고 가리고, 왜냐면 상처를 물려주기 싫으니까요. 그래서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정면으로 직시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데도 그 아픔과 상처를 응시할 때만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로 생각해요.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서 자기 정화가 이뤄지고, 그런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사실 이준익 감독에게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다.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을 기록한 후 그가 느끼는 부담감은 더욱 커졌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가 연출한 작품이 ‘왕의 남자’를 뛰어넘기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시사회와 일반시사회에서 ‘사도’에 대한 호평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도 약간의 기대는 하고 있었을 터.
“아직도 전 용기가 없는 것 같아요. 영화를 찍는 일도 저에겐 두려움이죠. 무서운 일이에요(웃음).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고, 열심히 홍보해서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극장에서 만나는데 그 자체가 두려운 행동이에요. 사람은 개인차라는 게 있는데, 영화라는 것은 짜여진 이야기로 사람들을 끌고 가는 것이잖아요. 끌고 가는 것 자체가 다른 정보를 차단하고 어떤 한 관점으로 몰아가는 거죠. 그게 가진 오류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를 찍을 때는 그 오류에 대해 자각을 못 하는 경우가 많고, 개봉할 때조차도 자기 정당화를 하는 부분이 많아요. 몇 년이 지나고 난 뒤엔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게 사실이고요. 그래서 저는 항상 앎과 삶이 일치할 수 있게 노력할 뿐이에요.”
↑ 사진=이현지 기자 |
“시사회를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호감을 먼저 밝혀줘서 감사해요. 하지만 감독 처지로서는 그런 호감이 반갑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기대를 증가시키면서 관객에게 실망감을 키우는 그런 기재로 작용할 염려를 안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기대하지 마세요’ 하는 것도 위선이고(웃음). 만약 제가 영화를 처음 하는 감독이라면 굉장히 기쁘고 자만할 수도 있을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왕의 남자’ 이후에 많은 실패에 쓴맛도 봤었거든요 저는. 인생이라는 게 골이 깊어야 산봉우리가 높은 법인데, 갈 지(之)로 헤매다가 이렇게 호감을 보여주시니 위안을 받는 거 아닌가 싶죠.”
사실 이준익 감독은 나름대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감독이었다. 하지만 ‘사도’ 언론시사회에서 그는 “500만 관객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물론 500만 관객이 결코 적은 수는 아니겠지만, 이미 천만 관객을 기록한 그가 좀 더 큰 꿈을 가지고 있을 거라 예상했다. 이준익은 이번 ‘사도’를 통해 관객이 궁극적으로 어떤 걸 느끼게 하고 싶었을까.
“실제로 ‘사도’ 크랭크인 때 했던 말이라서 그때 그렇게 말 한 거예요(웃음). 감독이 관객에게 의미를 주장하는 건 온당치 않아요. 의미는 부여받는 것이지 내세우는 게 아니니까요. 하물며 나는 아직도 많이 모자라서, 어떤 장면에 대한 의미 부여를 말로 설명하는 부족한 감독일 뿐이에요. 결론은 의미는 부여 받는 거죠.”
최윤나 기자 refuge_cosmo@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