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예능프로그램을 규제하는 언어 심의에 대해 방송이 건강한 언어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과 장르적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지난 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고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가 방송심의규정 제 51조(방송언어)를 위반해 제작진 의견진술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방심위는 “‘마리텔’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이 방심위에서 만든 방송언어가이드라인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프로그램의 특수성이나 시간대를 감안하고라도 이는 올바르지 않다는 것. 하지만 ‘마리텔’이 규정을 위반한 사례는 ‘심쿵’ ‘돌직구’ 케미‘ 등의 단어가 명시됐다. 이미 시청자 사이에서는 흔히 쓰이는 단어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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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많은 시청자는 ‘규제를 위한 규제’라고 비판했다. 채팅으로 시청자와 진행자가 소통하는 프로그램인 ‘마리텔’에서 이런 기본적인 채팅용어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장르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방심위 측도 할 말은 있다. 이날 열린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염연히 “통신용어들이 방송 자막을 통해 그대로 방송되는 것은 문제”라는 민원에 따라 열린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청자 사이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단어들일지라도 분명 이를 모르는 시청층이 있을 것이고, ‘마리텔’은 이 시청층을 ‘차별’했다는 관점에서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마리텔’의 사례처럼 방심위는 다소 구시대적인 규제일지라도 더욱 철저한 필터링을 통해 좀 더 건강한 방송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방심위에서 2014년 발표한 ‘방송언어에 대한 시청자 및 제작자 인식조사 연구’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언어문화 형성에 방송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특히 방송언어는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적언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적언어’인 만큼 청소년을 포함한 일반 대중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바른 언어생활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게 방심위의 입장. 또한 이 보고서에는 시청자와 제작자 모두 규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음을 설문조사의 결과로 나타내 지속적인 규제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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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많은 시청자와 제작진, 출연진 또한 방심위 규정에 따르도록 노력하고, 이 규제가 왜 필요한지를 인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촘촘하게’ 규제하는 언어규정에 장르적인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방송사의 예능국 PD는 “지나친 언어 규정 때문에 자막을 쓸 때 고민이 많이 된다. 자막은 빠른 시간 내에 사람들의 눈에 들어야 하는데 줄임말이나 신조어가 꽂힐 때가 더 많아 효율적인데 규제 때문에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개그 프로그램의 사정은 더한다. 단어 하나가 재미를 바꾸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코미디 프로에서 활약 중인 한 개그맨은 “예를 들어 ‘바보’와 ‘멍청이’를 두고 대사를 했을 때, ‘바보’보다 ‘멍청이’가 훨씬 재밌을 때가 있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도 재미가 갈리는 게 바로 개그”라고 말하며 “물론 다른 규제들도 많지만 언어 규정도 피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지뢰밭을 피하느라 정신을 쏟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개그맨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이 코미디언은 “언어의 심의 규정도 강해 진짜 웃긴데 대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단어와 소재가 계속 돌고 돌 수밖에 없다”며 촘촘한 규정이 오히려 개그 프로그램에는 ‘독’이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마리텔’의 한 관계자는 방심위의 규정에 따를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이렇게 간단한 단어도 규정에 걸리면 무서워서 자막 하나 제대로 쓰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이처럼 개그 프로그램이나 특수한 프로그램을 대상으로는 그 특성을 존중해줘야 하는 방식도 분명 필요하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첨예하게 갈리는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는 법적 제도가 마련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