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최윤나 기자] 배우 오달수가 한 번에 영화계에 ‘천만 요정’에 등극한 것은 아니다. 과거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가 소극장 인쇄물 배달을 갔다가 극단에 들어간 것은 우연이었다. 연희단거리패에서 본격적으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오달수는, 지금의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이윤택의 가르침으로 연기를 공부했다.
“제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유명하지만, 우여히 시작했다고 해도 그런 대가 밑에서 해서 정말 큰 행운인 것 같아요. 가혹할 정도로 훈련을 시키시고, 연기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심어주신 분 이시니까요. 기초를 탄탄하게 닦을 수 있었죠. 선생님을 안 만났으면 과연 제가 말 그대로 연극에 대한 정신, 그런 것들을 지금처럼 강하게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그가 이렇듯 고마움을 표하는 이윤택과는 인연이 각별하다. 이날 삼청동에서 만난 오달수는 이윤택에 대한 감사함과, 지금까지 자신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그를 만들어준 이윤택에 대해 회상했다.
“제 자랑 같지만 자랑이 아니라 제가 이윤택 선생님의 애제자였어요. 이른 나이에 연극을 한지 불과 4년 만에 오영진 작가의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통해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됐죠. 그때 나이가 24살 정도였는데, 60대 노역을 해야 하니까 멋모르고 했던 거죠. 이윤택 선생님은 당시 제게 ‘그게 바로 연극이다’라고 하셨어요. ‘어린 네가 60대를 연기한 그게 연극성이다’라고 하신 거죠”
“제가 출연한 연극 중에 대표작을 뽑자면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연극일거에요. 1인 7역이었는데, 옷을 갈아입고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안됐었죠. 1장이 끝나고 암전되면 그 자리에 서서 옷을 갈아입은 후에 다시 불이 켜지는 식이었는데, 한 번은 스태프와 약속이 잘못돼 옷을 안 가져다 주는 바람에 엉뚱한 곳에 서있던 적도 있었어요. 이거 말고도 다른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밤을 샐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연극을 할 때 일찍 사랑을 받았어요. 그러다가 ‘남자충동’이라는 작품을 하게 됐고, 그 작품이 서울에서 공연을 하나보니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된 거죠. 그렇게 하다가 2002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를 우연히 아는 분에게 소개를 받게 되고, 그걸 본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에 잠깐 출연하게 됐죠. 그렇게 ‘올드보이’를 찍고 난 이후에 계속해서 영화를 하게 됐어요”
그렇게 오달수가 영화계에 들어오게 됐다. 그는 다양한 영화에 감초 역할로 출연하며 ‘천만 요정’이라는 타이틀을 받게 됐다. ‘믿고 보는 오달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의 흥행파워는 항상 보장돼 있었다. 영화 ‘대배우’의 제목처럼, 오달수는 그렇게 대배우가 돼있었다.
“저는 대배우는 아니에요. 아무 데나 갖다 붙일 수 있는 호칭은 아니니까요. 제가 4, 5년 전쯤에 이윤택 선생님의 희곡 전집 10권짜리 정도를 받게 됐어요. 거기에 ‘배우 오달수에게’라는 말이 쓰여있었는데, 저는 그때 감동스럽더라고요. 배우라는 말을 듣는 것도, 유럽에선 어지간해선 배우라고 안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인심이 후하니까(웃음). 그때 선생님이 아무한테나 배우라고 안 하시는데, 그 분이 해 주신 거죠.”
최윤나 기자 refuge_cosmo@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