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안성은 기자] ‘태양의 로맨스’ ‘태양의 바이러스’ ‘태양처럼 은밀하게’
어딘가 어색한 이름이다.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연상케 하는 이 제목들은 모두 재편집 영상의 타이틀이다. 콘셉트도 다양하다 ‘유시진(송중기 분)이 윤명주(김지원 분)와 연인이라면?’ 혹은 ‘태후 바이러스가 아주 심각했다면?’, ‘유시진과 원류환(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수현 분)이 만난다면?’ 등.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영상들은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 유튜브와 포털사이트 블로그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감독’ 그가 바로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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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누리꾼들 사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약 3, 4개월 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재편집 영상이 공개되며 누리꾼들 사이에 ‘이감독’이란 존재가 인식되기 시작했다. 누리꾼들 사이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 그는 어느덧 재편집 영상을 만드는 이로서 유명인사가 됐고, 그의 새 영상이 공개될 때면 ‘제작사는 이감독 캐스팅 안 하고 뭐하냐’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누리꾼들이 ‘제작사의 캐스팅’ 타령을 하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영상과 관련된 학과를 졸업했지만 직업이 관련된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했었죠. 편집 영상을 만들게 된 것은 연말 시상식을 보면서였어요. 한 시상식에서 작품들을 교차 편집해 패러디 영상들을 선보였는데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작년 연말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영상의 퀄리티와 스토리로만 보자면 제작사의 길을 걸을 것 같은 그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점과 함께 또 다른 포인트는 그의 성별이었다. 인물 간의 멜로를 적극 활용하는 그가 당연 여자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일종의 선입견이 되었다. 그는 20대 후반의 평범한 남자였다.
“또래의 남자들에 비해 드라마, 영화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50부작이 넘는 작품이나 일일드라마처럼 호흡이 긴 작품은 즐겨보는 편이 아니지만, 현재 방송중인 미니시리즈의 경우 대부분 시청 중이죠”
스스로를 ‘드라마 덕후’라 칭하는 그. 그러나 드라마를 즐겨보는 그에게도 모든 장면을 기억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이감독의 무궁무진한 재편집 영상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 것일까.
“드라마를 보면서 매력적인 대사가 있거나 상황이 등장하면 메모를 해두는 편이에요. 최근 작품들의 경우에는 ‘몇 회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를 기억하는 편이라 딱히 메모를 하지 않지만, 예전 작품들을 보게 되면 늘 적어두는 편이에요. 그 장면들이 모여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거죠”
그의 콘텐츠는 이미 존재하는 영상을 재사용하는 것이기에 드라마와 영화를 새롭게 제작할 때처럼 촬영의 과정은 배제된다. 그러나 여러 편의 영상에서 장면을 오려내고, 이에 알맞은 효과음과 영상 효과를 삽입하는 과정이 결코 짧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현재 일주일에 한 편 가량 꾸준히 작품을 업로드하고 있다.
“월화드라마를 편집한다고 생각할 때, 일단 그 주에 방송되는 두 편을 모두 봐요. 그리고 스토리가 생각나면 곧바로 작업을 시작해요. 장면들을 모으고, 편집을 해 이어붙이죠. 그렇게 해서 이틀에서 사흘 내로 영상을 완성합니다. 보통은 금요일 쯤 영상을 공개하죠”
그는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그가 설명하는 과정을 들어볼 때 이는 결코 ‘한 시간 내에 뚝딱’ 완성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는 지난주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물론 직장을 다닐 땐 잠을 거의 못 잤어요. 하루에 세시간 정도? 근데 제가 좋아하는 일이잖아요.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죠”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때로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 탐날 수 있는 법. 현재 그의 영상이 평균적으로 5만에서 높은 것은 30만 뷰를 훌쩍 넘은 상황에서 또다른 욕심이 생길만도 하지만 그에게 드라마를 편집해 올리는 것은 여전히 취미 생활의 일부였다.
“대가요? 딱히 금전적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닌데…. 저는 정말 누리꾼들이 남겨주는 댓글 하나하나에 기쁨을 느껴요. 그 분들이 주는 응원이 제겐 가장 좋은 선물이고요. 제게는 그냥 ‘취미’잖아요. 업이 아닌 취미에는 칭찬 정도면 적당한 것 같아요”
‘칭찬’이 가장 즐겁다는 그. 그의 남다른 아이디어와 편집 기술을 보다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현재 잠시 일을 쉬고 있는 그에게 영화감독에 도전할 의사는 없을까. 이에 그의 답은 애매하지만 ‘YES’였다.
“대학시절 영화감독을 꿈 꿨고, 아직도 그 꿈을 포기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대학교에서 졸업 작품을 준비하며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단편 영화 한 편 만드는데 6개월을 소요하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생각보다 내가 ‘잘 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도 느꼈고,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몸으로 느꼈죠. 하지만 좋은 시나리오가 떠오르고, 좋은 글이 나온다면 언제라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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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상에서 제작사는 이감독 캐스팅 안하고 뭐하냐’는 댓글이 있다는 말을 그에게 전했을 때, 그는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취미니까 좋게 봐주시는 거죠. 업이면 달라질걸요?”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20대 초반, 학생시절 가졌던 무모함을 내려놓고 사회와 타협하는 법을 배운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도전할 의사는 있지만 ‘무조건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단던하지는 않았다.
“곧 죽어도 꿈이 영화감독이란 건 아니에요. 지금 잠시 일을 쉬고 있는데 다시 또 방송과 무관한 쪽으로 일을 구할 수도 있겠죠? 아마 그렇게 된다면 ‘이감독’의 취미생활은 뜸해질 것도 같아요. 언젠가 그냥 ‘드라마 보는 것 좋아하는 아저씨’로 살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안성은 기자 900918a@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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