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나는 노배우이기 때문에….”
배우 윤여정은 인터뷰 내내 자신을 ‘노배우’라 칭했다. 보통 ‘여배우’라고 칭호를 붙일 법도 한데, ‘노배우’가 더 어울린다며 손사래 친다.
“나이 70이면 노배우가 맞다. 여배우, 그러면 뭔가 예뻐야 할 것 같고 거추장스럽다고 할까.(웃음) ‘여배우’하면 뭔가 화려하고 예쁘고 그런 이미지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 화려한 젊은 애들한테 붙여야할 것 같은 고정관념이 있다.”
![]() |
극 중 윤여정은 제주도의 강한 바람과 햇살 속에서 물질을 하고 나물을 캐면서 평생을 살아온 평범한 할머니면서, 손녀를 잃어버린 12년의 시간 동안 겪었을 심적 고통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드러내며 따뜻한 울림을 선사한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이가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열심히 쓴 것 같았다. 그래서 독립영화인가 싶었다. 나는 대체로 도회적인 여자 캐릭터로 섭외가 많이 들어 왔던 터라 감독에게 왜 나냐고 물으니 이미 그 이미지는 소진됐다고 답하더라. 재밌는 청년이라 생각했다. 할머니가 모든 걸 다 받아들이는, 용서하는 부분이 흥미로워 일단 감독과 만났다.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
12년의 과거를 숨긴 채 집으로 돌아온 수상한 손녀 혜지와 오매불망 손녀바보 계춘할망의 이야기를 다룬 ‘계춘할망’은 탄탄한 전개와 함께 눈도 즐겁게 만든다.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가 녹아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겨 따뜻한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의 촬영이 ‘힐링’의 시간이 됐을 법한데 윤여정은 또다시 손사래를 쳤다. 힐링의 시간보다는 나날이 투쟁이었다는 것. 그는 까칠하지만 명쾌한 어투로 촬영장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설명하며 “제작자보고 영화 끝나고 스크롤이 올라갈 때 나오는 ‘고마운 사람들’ 부분에 제일 먼저 내 이름을 집어넣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촬영하면서 뱀장어한테 사타구니를 물리지 않나. 해녀복을 입다가 귓바퀴가 찢어지질 않나. 해녀복이 아무 지퍼도 없고 단추도 없고 해서 해녀끼리도 같이 입혀주고 같이 벗겨주는 옷인데, 내가 너무 고생하니까 스태프가 빨리 숨통을 트이게 해주려다가 귓바퀴가 찢어지게 됐다. 노배우한테는 조금 고통스러운 현장이었다. 피부도 아직 빨갛다. 머리는 옥수수수염이 됐고, 피부과에 갔더니 진정 시켜야 한다고 하더라. 애들 때문에 속이 썩어서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다.“
![]() |
“쉰 살 넘어서 알았다. 증조할머니는 손녀가 얼마나 예뻤겠나. 씹어서 뭐 먹여주고 그런 게 그땐 너무 비위생적인 것 같고 싫었다. 정신이 들어서 할머니 생각을 해보니 그때 할머니는 얼마나 슬펐을까. 엄마와 할머니는 다르더라. 엄마는 사랑이 가르침으로 되는데, 할머니는 그냥 모든 게 다 예쁜 거였다. 그걸 내가 50살이 넘어 알게 됐다. 그래서 ‘계춘할망’이 증조할머니에게 바치는 영화이기도 하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윤여정은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언급했다. 성격도 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게 진짜 종합적이라는 것. 그는 “드라마도 같지만 속전속결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더 살아남기가 힘들다. 영화 현장은 훨씬 여유롭다”고 덧붙였다.
윤여정은 ‘계춘할망’ 외에도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와 영화 ‘죽여주는 여자’로도 다시 대중과 마주한다. 이미 ‘꽃보다 누나’로 그만의 솔직한 매력을 보여준 바 있는 그는 예능을 통해서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윤여정은 거침없고 솔직하게 답을 이어갔다.
“사실 나는 예능을 싫어한다. 배우로 평가 받는 건 달게 받겠다. 그건 내 일이니까. 그런데 내가 정치인처럼 말을 가려서 할 수 있는 마인드도 없고, 예능에 나가서 내가 편하게 하면 내 모습 그대로 나오는 거지 않나. 물론 그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의 사생활로 평가받고 싶지는 않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