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당돌하다. 밝고 씩씩하다. 진지하게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도 즐거웠던 순간이 문득 생각난 듯 갑자기 깔깔 대며 웃으며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한다. 실제로 만난 배우 김태리의 모습이다.
배우를 만나기 전 상당한 수위의 베드신을 소화하는 게 부담이 됐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확고한 가치관과 당돌한 김태리의 모습에서 금세 그 생각이 사라졌다.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낼 때마다 그에게서 묻어나는 행복한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 |
↑ 사진=옥영화 기자 |
김태리는 ‘아가씨’에서 하녀 숙희를 연기했다.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그는 속고 속이는 상황에서 곳곳을 누비며 생쥐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가녀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에너지와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눈빛, 그리고 아가씨를 향한 진심과 백작과의 거래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이어가는 복잡한 캐릭터를 완벽 소화했다.
이미 여러 번 영화를 관람한 김태리는 “두 번째 본 게 제일 좋았다”며 “두 번째 봤을 때 흐름을 따라가고 하니까 배우들 표정 같은 것도 너무 재밌고, 반응하는 배우들 표정도 보이고 장치로 심어놓은 소품도 눈여겨 볼 수 있다. 음향 같은 것도 그렇다. 히데코 방 장면에서 아가씨를 처음 만날 때 빗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들리더라. 칸에서 봤을 때는 좀 정신없이 봤었는데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들려서 훨씬 풍부하게 봤다”고 말했다.
김태리는 시나리오를 읽고 ‘아가씨’의 대사에 흥미를 느꼈다. 한국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대사 같았고, 그게 어색하거나 당황스러운 게 전혀 없이 잘 읽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캐릭터 하나 버려진다는 느낌 없이 살뜰히 챙긴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게 잘 어울러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이끌리게 됐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림을 상상하게 되지 않나. 이 갈아주는 장면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그건 원작 소설에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BBC 드라마에도 있는 부분이고 우리 영화에도 들어가는 부분이니까 이 부분을 어떻게 만들지 궁금했었다. 시나리오를 몇 번 읽다보니 숙희가 자꾸 어리숙하게 보였다. 사실 숙희는 굉장히 프로다. 17년 동안 도둑으로 살아왔고 자기 일에 자신감이 있고 자존감도 있고, 또 능력도 있다. 그런데 나중에 반전으로 인해서 드러나는 부분 때문에 영화에서 거짓말이 오히려 서툴러 보이는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런 부분 때문에 숙희를 어리숙하게 봤었는데 그게 초반에 연기할 때 좀 방해가 됐었다.”
![]() |
오디션에 발탁된 이후 책임감과 부담을 느꼈을 법도 한데 김태리는 씩씩했다. 오히려 박찬욱 감독을 굳게 믿기로 했고 ‘감독님이 알아서 잘 해주시겠지’라는 생각을 가졌다. 촬영 전에는 오랜 기간 감독의 사무실로 출근 도장을 찍으며 완벽한 숙희로 탄생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영화는 그만큼 리딩을 안한다고 들었는데, 전체 리딩이 두 번 정도 있었고 혼자 사무실에서 리딩을 하기도 했다. 감독님이 사무실로 자꾸 나오라고 했다. 날 보고 싶어 하시더라.(웃음) 그래서 만나서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하고 숙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또 리딩도 하고 감독님과 잘 안 풀리는 게 있으면 같이 풀어보고 그런 시간을 많이 가졌다.”
‘아가씨’에는 일본어 대사량이 어마어마하다. 다른 배우들 만큼은 아니지만 김태리에게도 일본어 대사가 주어졌었고, 김태리 역시 촬영 전, 그리고 촬영을 하면서도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 연습에 매진했다.
“배우들 다 일대일로 강습했다. 처음에 기초를 가르쳐 주시는 분과 대사를 중점으로 가르쳐주시는 분 두 분이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서 아예 이걸 뜻도 완전히 이해를 하고 그런 상태로 촬영에 임했다. 선배님들이야 시간이 부족하니까 연습하는 데 있어 힘들었을 거다. 나는 신인이고 시간도 많고 하녀 역할이라 한국어대사가 훨씬 많았다. 준비 기간 동안 수월하게 잘 한 것 같다. 재미있었다.”
‘아가씨’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김민희와 김태리의 동성애 베드신이다. 각각 아가씨와 순희 역을 맡은 두 사람은 파격적이면서도 매혹적이게 그들만의 사랑을 그려나간다. 특히 야하기보다 “아름답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만큼 김민희와 김태리는 인물의 숨소리까지도 정교하게 표현하며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완성했다.
“현장에서 민희 언니가 너무 잘해주셨다. 그때는 정확하게 많이 못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지나서 생각해보면 언니가 많이 배려해줬던 게 새록새록 떠오르더라. 그런 게 너무 감사하다. 베드신 촬영 때는 (베드신을)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닥쳤을 때가 제일 어려웠지만 그래도 언니랑 같이 있고, 미리 마음가짐도 잡아놓았다. 스태프들도 많이 배려를 해줘서 무사히 촬영을 마친 것 같다.(웃음)”
![]() |
‘아가씨’ 속 김민희와의 호흡도 좋지만 하정우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은근한 케미를 뿜어내는 김태리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특히 아가씨 앞에서는 숨겨두었던 숙희의 진짜 성격이 백작 앞에서 드러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에게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정우 선배와 촬영도 너무 재밌었다. 선배가 개그 욕심이 정말 많다. 그걸 촬영할 때는 잘 못 느꼈었는데 홍보하면서 인터뷰 같은 걸 같이 하다보니 너무 재밌더라.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같은데 개그가 들어가 있다.(웃음) ‘태리야끼’라는 별명도 하정우 선배가 현장에서 지어준 거다. ‘민희 민희는 미니미니~. 태리는 태리야끼’라고 하더라. 태리야끼 말고도 스태프들은 ‘숙회’라고도 불러줬다. 먹는 걸로 별명이 있었다. 그래도 애정이 묻어나지 않나. 너무 좋다.(웃음)”
‘아가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함박웃음을 잃지 않았던 김태리는 “첫 영화로서 큰 의미가 있다”라며 “많은 배움을 준 영화이고 지금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힘들지 하는데 소소한 걸 다 깨닫게 해주는 게 너무 좋다”고 말했다. 특히 배우로서 어떤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쭉 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소신 있게 설명을 이어갔다.
“역시 연기를 계속 하다보면 중간 중간 실수나 제 능력 부재가 생길 때도 있겠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좋은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게 다 목표가 아닐까.”
![]() |
↑ 사진=옥영화 기자 |
손진아 기자 jinaaa@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