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성우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만큼 불안감이 커지는 건 성우를 지망하는 ‘성우 지망생’들이다. 점점 좁아지는 공채의 문과 공채를 넘어서도 ‘일거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우들은 각 방송사에 입사해 일정 기간 동안 전속계약을 거친 후 프리랜서 성우가 된다. 전속계약을 거친 후에는 한국성우협회의 협회원으로 등록, 정식으로 프리랜서 성우로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이 ‘프리 성우’들이 성우 지망생들에게는 ‘최종 목적’이다.
하지만 프리 성우가 되려면 방송사 전속 성우를 필수로 거쳐야 하는데, 그 문이 너무나 좁다. 현재 성우 공채로 발탁되는 인원수는 KBS 12명, 투니버스 6~10명, EBS 4명 등이다. 한 해에 공채 성우가 총 40명이 안 된다. 자연스럽게 공채 경쟁률은 200대 1을 넘길 정도로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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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성우 지망생들은 사비를 들여 학원을 다니고 레슨을 받으며 성우에 대한 꿈을 이어갔다. 한 성우 지망생인 A씨(여·26)는 현재 사무직에 종사하면서 저녁에는 성우 학원을 다니며 성우 공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성우 시험을 한 차례 봤지만 2차 관문에서 탈락했다고 회상했다.
A씨는 “저는 그래도 본격적으로 준비한지 3년 밖에 안 됐다. 주변엔 길게는 8년까지 준비한 사람도 있다. 이런 분들에 비해서는 짧은 편”이라고 말하며 “성우학원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언제까지 공채 시험을 준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게다가 성우지망생들 사이에서는 지금의 공채 인원마저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들이 있어 더욱 불안함은 크다고 말했다.
한때 성우 공채 시험을 준비하다 현재는 언더성우(비협회 성우 혹은 인디 성우)로 활동 중인 B씨는 “한 7년 정도 공채를 준비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우 공채에 나이 제한이 없다고는 하지만 뽑히는 사람들을 보면 서른 전후까지가 최대다. 그래서 서른 이상이 되면 아예 공채를 접는 사람도 생기고, 그나마 나이의 폭이 다양한 KBS에만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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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무한도전 성우특집과 "주토피아" 스틸, "고 녀석 맛나겠다" 성우진 |
무엇보다 성우지망생들은 들어가는 돈과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좁은 문과 그 공채의 문을 통과해도 그 후의 일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 허무하다고 말했다. B씨는 “공채 준비를 하며 학원에 쏟아 부은 비용만 상상초월이다. 성우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라 성우지망생들은 오로지 학원이나 레슨에 의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고, A씨는 “주변에서 그렇게 돈을 많이 썼는데 결국 포기하고 아예 다른 길로 나가는 걸 보면 안타깝고 씁쓸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언더성우의 활동이 하나의 ‘길’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B씨는 “전엔 ‘오로지 공채’였다면 지금은 ‘첫째는 공채지만 안 돼도 방도는 있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공채를 거쳐야만 성우가 된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오랫동안 공부를 했는데도 (공채가)안 되면 언더성우로 전향하는 분들도 많아졌고, ‘목소리의 실력을 쌓자’는 게 생겼다. 오디션 제도와 흡사해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A씨나 B씨와 같은 성우지망생 혹은 언더성우들은 목소리로 연기하는 성우의 매력에 푹 빠져 다른 길은 일단 접어두고 오로지 성우의 길만 걸으려 하고 있다. 다른 성우지망생들도 비슷하다. 서로 작은 그룹을 만들어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언더성우로 활동하며 커리어를 쌓는 등 일단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A씨와 B씨 모두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A씨는 “제가 처음에 성우학원을 다닌 게 스무 살 무렵이었다. 그 때 다른 지망생 언니가 ‘절대 하지 마라’고 말했었는데 그 때 그말을 들을 걸 그랬다”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B씨는 “실제로 주위에서 성우를 꿈꾸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냔 연락이 온다. 그럴 때엔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한다. ‘네가 죽어서도 하고 싶냐’는 말까지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로 천의 얼굴을 연기하는 성우라는 직업이 화려해보일 수도, 편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힘든 직업이다. 목소리의 숨소리를 잡는 것조차 몇 년을 공들여 배우는데, 정작 일거리가 적어져 배운 기술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성우지망생들은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도, ‘직진’을 하기에도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